"미국, 중동 동맹국들 신뢰 잃어"…美 '가자 휴전' 비토에 아랍권 반발(종합)
팔 "유엔 시스템에 분노·좌절"…요르단 "전쟁 지속시 美 전후 계획 돕지 않을 것"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유엔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스라엘-하마스간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부결된 가운데, 아랍권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CNN 등 외신을 종합하면 유엔 안보리는 8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가 제출한 휴전 결의안을 놓고 표결을 실시했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이 무산됐다.
UAE가 제출한 결의안에는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상황을 둘러싸고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모든 인질의 석방 △인도주의적 접근 보장 △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표결에서 이사국 13개국이 찬성했지만, 미국은 거부권을, 영국은 기권표를 행사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가 통과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만 하며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 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미국은 이날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현 상황에서의 휴전은 하마스에만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우드 차석대사는 "우리는 다음 전쟁을 치르기 위한 씨앗만 심는 지속 불가능한 휴전을 요구하는 이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은 휴전 대신 민간인 보호와 인질 석방을 위한 '교전 중단'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유엔 주재 영국 대표부는 기권표를 던진 이유에 대해 "하마스가 무고한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한 잔혹 행위를 비난하는 내용이 결의안에 담기지 않는한 휴전 결의안에 찬성 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영국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민간인 사망과 강제 이주가 지속돼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길라드 에르단 유엔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이스라엘인과 가자지구인 모두의 안전은 하마스가 제거되고 나서야 달성될 수 있다"며 "평화를 보장하는 진정한 길은 오직 이스라엘의 임무를 지지하는 것이지 휴전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통과가 무산되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이 강력히 반발했다.
하마스 지도부 일원인 에자트 엘 레시크는 성명을 내고 "미국이 휴전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이다. 이 결정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인종 청소'를 자행하는 점령군(이스라엘)의 학살 행위에 직접 가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모하마드 슈타이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안보리가 공습을 중단하지 못한 것은 치욕이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지속적으로 살상, 파괴, 이주를 가능하게끔 만든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민간인의 생명을 신경 쓴다고 주장하는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했다.
샤타이예 총리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가들에 감사를 표하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저지하려는 시도뿐만 아니라 인도적 지원 노력을 계속할 것을 촉구했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는 "우리는 유엔 시스템, 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총회에 대해 분노하고 속상해하는 우리 국민과 함께 화가 났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 지구 반대편에서 휴전을 요구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의 엄청난 압박에 결국 반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워머신(전쟁 도구)를 보고 화가 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이 수만명을 죽였음에도 안보리는 마비됐다"고 규탄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전쟁이 지속되는 한, 아랍 국가들은 전후(戰後)를 계획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대규모 학살을 지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고, 삶을 파괴하고, 식량과 물 공급을 거부해 지역 전체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 중동 지역에 대한 동맹국들의 이익을 훼손하고, 자국민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환경에 기여함으로써 그들은 자국민들의 이익 마저 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파디 장관은 '미국이 아랍 동맹국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고 있는지'는 질문에 "우리 모두가 신뢰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학살을 멈추기 위해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신뢰를 잃고 있다. 중재자와 평화 진영은 신뢰를 잃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안보리에서 직접 특정 안건에 대한 논의를 요청할 수 있는 유엔헌장 99조를 발동하면서 소집됐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안보리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가자지구를 둘러싼 분쟁에 따른 확전이 우려된다며 휴전 압박을 가하라고 촉구하며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했는데, 헌장 99조는 분쟁 예방을 위한 조정 및 중재에 관한 유엔사무총장의 권능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하마스 편에 섰다고 비판하며 헌장 99조 발동은 이스라엘에 대한 유엔 사무총장의 편향된 입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한편 하마스-이스라엘 분쟁 발생 이후 안보리는 결의안 통과를 위해 회의를 소집했지만, 네 차례 실패했다가 지난달 중순께 '긴급한 인도주의적 일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 한개를 통과시켰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10월7일 개전 이래 이날까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1만748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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