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 떨어져선 안 될 ‘순환의 짝’

한겨레 입력 2023. 12. 9. 11:05 수정 2023. 12. 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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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생명의 공적 체계
자연에서 난 물·녹말·단백질 등
인체 들락날락하며 생태계 지탱
생명·외부 교류로 ‘평형·항상성’
도시 집중, 자연과 멀어지는 문제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의 생명은 자립적이고 내밀한 존재다.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그렇고 침해받아서는 안 될 생명의 안전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생명은 그렇게 가장 사적인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잘 따져보면 생명은 지극히 공적인 대상이기도 하다. 생명을 주어진 정체성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는 아주 사적인 것으로 파악되지만 매 순간 획득해야 하는 항상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공적인 대상이 된다.

햇빛 에너지에서 시작되는

우선 우리 몸은 끊임없는 순환과 교류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 몸의 60% 가까이를 이루고 있는 물은 쉼 없이 외부에서 유입되어 음식물을 낱개 단위로 쪼개는 반응에 참여하고, 체온 유지를 돕고, 효소나 세포의 모양을 바로잡아 제 기능을 하도록 한다. 또 외부의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장이나 기관지 표면의 점액막을 형성해 병원체로부터 인체를 지키는 데도 일조한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물은 인체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시 피부와 배변을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물은 내 몸속에서 형태와 기능을 유지해주고 외부로 배출된 뒤에는 강과 바다를 이루며 구름과 비와 눈의 형태로 우리 주변을 순환한다.

사람이 쌀밥·보리밥 등을 통해 흡수하는 녹말은 햇빛 속 에너지가 대기 중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와 땅과 대기에 퍼져 있던 수분을 결합시키면서 그 안에 스며들어 만들어진 산물이다. 녹말은 입과 소장에서 잘게 쪼개져 포도당이 된 채 세포 속으로 흡수돼 인체에 필요한 에너지 화폐인 에이티피(ATP·아데노신삼인산)를 만들어낸다. 인간이 생활하는 과정에서 인체 근육을 이루는 세포 하나당 매초 1천만개 이상의 에이티피가 만들어져 쓰인다. 태양과 대기와 토지가 우리의 웃음을 만들어내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사랑하는 아이의 손을 잡게 한다. 태양을 통해 들어온 에너지가 인간을 통해 세상으로 다시 발산되는 것이다.

소·돼지·닭이나 콩류를 통해 흡수한 단백질은 기원이 좀 더 복잡하다. 식물의 뿌리에 공생하는 박테리아들이 대기 중 질소 기체를 암모니아 형태로 변형해 식물에 공급하고 식물은 이를 원료로 단백질의 기본 단위가 되는 아미노산을 만든다. 식물은 그 아미노산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 생명을 유지하다가 소나 돼지나 닭에게 먹힌다. 초식동물들이나 콩류 식물은 다시 인간에게 먹히면서 단백질을 공급한다. 단백질은 인간의 위와 소장에서 그 단위가 되는 아미노산이 되어 세포 속으로 흡수된다. 세포 속으로 흡수된 아미노산은 다른 아미노산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거쳐 세포의 요구에 부응하는 아미노산 조성을 갖춘 뒤 인체에 필요한 다양한 단백질을 만드는 데 쓰이거나 포도당으로 변신해 에너지 화폐인 에이티피를 산출한다. 더 나아가 아미노산은 도파민·아드레날린·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나 디엔에이(DNA)·알엔에이(RNA) 재료 중 하나로 쓰인다. 인체 내에서 아미노산은 다양한 변신을 하며 많은 물질을 만들어내지만 이들은 정체되지 않고 분해되고 사용된 뒤 피부의 자연스러운 탈락이나 배변을 통해 인체 밖으로 나간다. 햇빛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은 미생물들이 대기를 이용해 물질을 만들어내고, 이런 물질이 식물과 동물의 몸을 타고 인간에게 전달돼 사용되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여러 생명의 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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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아닌 공존해야 할 자연

인체의 항상성은 이와 같은 순환과 교류 속에서 이뤄진다. 인체 내에 존재하는 모든 질서는 외부 환경에 놓인 다양한 생명체의 활동과 늘 맞물려 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개체들과 환경으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 순환과 교류를 한다. 이 광대하고 부단히 연결된 체계는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하거나 발달하고 재생산을 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 과정은 쉼 없이 벌어지는 반응들의 연쇄이기 때문에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즉 생명은 외부 세계와 부단히 관계를 가지면서 동적 평형을 맺는다. 이처럼 거대한 공유 체계 속에서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 생명은 공적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이유로 항상성을 잃게 되는 과정을 질병이라 하는데 앞서 서술한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하나의 건강’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인간은 주위 생명체들을 포함한 다양한 자연과 대기·강물·바다와 같은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들을 맺으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여기저기 관계의 파탄이 일어나게 되면 인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생명의 공적인 속성에 주목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근대 과학이 크게 발전하면서 자연은 철저히 이용과 정복의 대상이 되었고 이러한 관점은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 고립된 생명이 없고 모두 연결된 채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인간이 그 체계를 운영·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체계의 일부라는 깨달음에 기반할 때 자연은 공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 자신이 속한 환경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인간이 당장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골몰하면 할수록 자연이라는 생명의 공적 체계는 더욱 피폐해지고 그 안에 속한 인간의 생명은 위태로워진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필요하지만 고도 산업화로 주요 자원이 거대 도시로 집중되면서 인간이 자연과 직접 관계를 맺는 활동은 날로 쇠퇴하고 있다. 농지와 목초지가 있는 시골은 빠른 속도로 소멸되며 그 땅에서 먹거리를 기르던 노인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반도체나 석유화학이 우리의 현재를 지탱한다면 시간을 초월해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연결돼 있다. 우리의 몸이 공적 체계 속에 존재한다면 자연을 양육하는 일 역시 지극히 공적인 것이다. 선조들이 쓰던 ‘먹는 것이 하늘이다’라는 말은 자연과 세상의 섭리를 정확하게 꿰뚫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지금 사라져가고 있는 시골과 땅의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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