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 벽돌 120장을 600만원에 샀다면? [영감 한 스푼]
이 작품은 1966년 미국 작가 칼 안드레가 만든 ‘등가 8’(Equivalent VIII)였죠. 미술관은 이 작품을 얼마에 샀을까요?
바로 6000달러, 단순 계산으로 600만 원입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훨씬 더 비싼 가격이겠죠) 작품을 보고 가격을 들으면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600만원이라면, 벽돌 한 장에 5만원어치인가? 아니면 쌓는 노동력도 포함인걸까? 미국 작가이니 배송비도…? 비슷한 논란이 영국에서 있었습니다.
“혈세 낭비” 영국 뿔나게 한 ‘벽돌’
스캔들이 일어난 것은 1년 뒤인 1976년. 영국 주간지인 ‘더 선데이 타임스’가 작품 가격을 보도하며 “한가한 작품에 혈세를 낭비했다”고 비판한 뒤였습니다.
더 선데이 타임스는 테이트 미술관이 정부로부터 매년 100만 달러가 넘는 예산을 받으면서, 존 컨스터블처럼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라 쓸데없는 곳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첫 보도에서는 미술관이 산 가격의 두 배인 1만2000달러로 작품 가격이 잘못 알려지면서 분노를 부채질했죠.
급기야 예술부 장관이 나서 “테이트 이사회는 실험적 예술에 예산을 쓸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 나는 그들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언론에 밝히며 미술관의 결정을 옹호했죠.
미술관은 작품이 관심을 받자 1976년 2월 다시 수장고에서 꺼내 전시장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시민이 와서 벽돌 위에 페인트를 뿌리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답니다.
지금 가치는 수십억, 미술관의 승리
‘벽돌’을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일단락되었을까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미술관의 완전한 승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안드레의 작품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언론의 유명세를 타면서 이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을 관객들도 이 작품을 별명인 ‘벽돌’로 알아보는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죠.
우선 영국의 미술관 소장품 관련 협회에서는 이 작품의 가치를 약 200만 파운드(약 33억 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칼 안드레가 구리판 100개를 가지런히 바닥에 놓은 작품이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16만 달러(약 28억 원)에 낙찰됐으니, ‘벽돌’의 유명세를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닙니다.
약 40년 사이에 작품 가격은 600만 원에서 33억 원으로, 500배 넘게 뛰었으니 미술관은 본전은 물론 아주 남는 장사를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인식 예술의 대표 사조, 미니멀리즘
이유는 안드레가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 예술’의 맥락에서 작품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 예술은 안드레는 물론 도널드 저드, 리처드 세라 등의 작가가 대표적인데요.
미니멀리즘 예술의 맥락에서 벽돌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는 황당하게도 “당신이 보는 대로 판단하라”, 즉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20세기 인간 사상사의 중요한 단면 중 하나인 ‘현상학’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 맞물려 미니멀리즘 예술은 ‘예술가의 의도’를 지워버립니다. 즉 예술이 점차 신과 왕을 버리고, 인상주의 예술에서 ‘작가의 눈’을 강조했는데 이제 작가도 없앤 것이죠.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문학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에서 의미가 생긴다고 말한 것처럼, 미니멀리즘 예술가들도 ‘예술가의 죽음’을 선언한 셈입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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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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