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푸라기]실손 청구 전산화 내년 10월…득일까 실일까

김희정 2023. 12.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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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보험금 지급·가입 거절 악용 우려
소비자이익 이면엔 보험사 손해율 관리 목적
/그래픽=비즈워치

의료기관에서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서류를 보험사에 전산으로 전송하는 시스템 구축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기관과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보험금 청구절차 △청구양식 표준화 △정보 송수신 인증·보안 방안 마련 등 사전작업에 착수한 겁니다. 

금융당국, 전산시스템 구축 추진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라 보험사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해야 하죠. 이때 관련 업무를 대통령령으로 정한 '전송대행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데요. 전송대행기관 지정을 두고 의료계와 보험업계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세부사항부터 우선 처리키로 한 거죠.▷관련기사 : 금융당국,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속도 붙인다(11월 3일)

당장 병상이 30개 이상인 병원급 의료기관은 내년 10월25일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시작돼야 하거든요. 1년도 채 남지 않은 겁니다. 병상이 30개 미만인 의원급 병원과 약국 등은 2025년부터고요. 금융당국 관계자는 "TF 운영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으나, 국민의 편의 제고와 의료비 경감을 목표로 적극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죠.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4000만명에 달하며 연간 1억건 이상의 보험금 청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장의 서류를 일일이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는 등 청구절차가 복잡해 연간 2000억~3000억원 내외의 금액이 보험사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지고 있죠.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시행되면 이런 미청구 보험금이 손쉽게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겁니다.

과연 '편익' 뿐일까

하지만 한쪽에서는 소비자 편익은 '잠깐'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앞으로 보험사들이 개인 의료정보와 진료데이터를 대거 축적한 뒤 이를 보험금 지급 거절·가입 거부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보험보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면 큰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소비자들이 더 많고요. 지금도 기존 보험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1000~5000원짜리 청구 건 때문에 애를 먹는 경우가 흔하다는 거죠. 

보험금 청구 내역은 ICIS(보험신용정보통합조회시스템)를 통해 '전체 보험사'가 공유하는데요.(보험금을 받은 보험사에서만 불이익을 당하는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관련기사 : [ICIS의 세계]①"내 보험가입이 거절 당했다"(2021년 10월13일) 여기서 고지의무(이전 3개월~5년간 치료이력을 보험사에 알리는 것) 기간 밖의 치료이력까지 모두 조회할 수 있어 보험가입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고 해요. 

ICIS 보험신용정보통합조회시스템 이용사례/그래픽=비즈워치

보험료가 할증되거나 부담보 조건이 붙는 식으로요. 비싼 유병자보험으로만 가입될 수 있고요. 최악의 경우엔 보험 가입이 거절되기도 하죠.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시행되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거라는 관측이 고개를 드는 겁니다.

보험금 받을 때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의심스러운 보험금 지급 조사 때 보험사 쪽 손해사정사들이 과거 진료기록 서류들을 요구하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소비자들이 일부 동의를 해야 볼 수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정보들이 알아서 보험사에 굴러 들어갈 거라는 거죠. 병원이나 약국에서 무심코 청구한 몇천 원짜리 보험금 청구서 때문에요.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몇천억원의 실손보험금을 내주는 대신 전반적인 보험 손해율 관리가 쉬워지는 거죠.

보험료 폭탄 더 커질수도

실손보험료 폭탄이 더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청구 간소화로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면 손해율이 오를 게 뻔하니까요. 실제로도 실손 지급액 증가→손해율 증가→보험료 인상이 몇 년째 되풀이 되고 있고요.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모든 의료·처방정보가 소비자 의도와 상관없이 무조건 보험사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거죠.실손보험금 청구 주체가 가입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의료비만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과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종이문서 심사 후 전산입력·보관하는 절차나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실손보험금 지급이 빨라질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김희정 (kh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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