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개 "길어야 몇 달"…86세 할아버지가 울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수술 안 하면 "짧게는 며칠, 길어봐야 몇 달"이란 말에 할아버지 '눈물'
수술 잘 됐지만 비용 지불 못해, '모금' 예정…"너무너무 고맙고, 많이 미안합니다"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해봐야 제대로 안다며, 동떨어진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습니다. 격주로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갑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나 숙제가 더 많으니,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들을 가끔씩 풀고자 합니다.


털이 덜덜 떨리던 하얀 개를 품에 안은, 할아버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식보다 낫다던 유일한 가족, 반려견 '행운이'. 파란 가운을 입은 수의사가 대답했다.
"글쎄요, 수술 안 받으면…짧게는 며칠, 길어봐야 몇 달일 거예요."
생각보다 짧은 선고일. 맘 준비가 안 된 할아버지는 부정하기 시작했다. 돌보던 동네 고양이 행복이 얘길했다. 그 녀석도 병원에서 죽을 거라 했는데, 여태 잘 살고 있다며. 수의사는 무언가 답하려다 말을 삼켰다. 할아버지 뒷모습은 작고 무력하기만 했다.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응원하던 우리 세 사람. 이규상 트레이너,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 그리고 나. 갑작스레 아픈 행운이를 보며, 우린 맘이 몹시 분주해졌다. 병명은 '자궁축농증'.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찾아온 곳이 유기동물 임시보호를 살뜰히 알리는, 동네 카페 겸 서점 '정글핌피'였다. 장신재 대표가 할아버지를 도우려 TV동물농장까지 신청했다. 사전 취재까지 마친 다음 날 문자가 왔다. '행운이가 없으면 마음의 병까지 생길 것 같습니다. 남은 인생 동안 함께해야 겠단 생각입니다. 미안합니다.'

이를 안 뒤 할아버지를 돕고 싶었다. 혹여나 돌아가셨을 때 입양가기 쉽게 행운이를 훈련하잔 거였다. 설채현 놀로클리닉 수의사께 부탁했고, 고맙게도 좋은 트레이너를 소개시켜줬다. 이규상 트레이너였다. 그리 나와 장 대표, 이 트레이너 셋이 할아버지와 행운이를 응원하는 모임이 됐다.
시월 중순부터 훈련이 시작됐다. 할아버지 껌딱지인 행운이가, 다른 이와도 잘 지내게 하는 훈련이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동네 산책 훈련을 하고, 정글핌피로 돌아와 둔감화 훈련을 더 했다.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든 건 2주 전쯤부터. 간식도 잘 먹지 않고 불안정한 느낌이었다. 엉덩이를 바닥에 끌기도 했다. 점액 비슷한 게 묻어났다. 이 트레이너도 행운이가 심상찮단 걸 직감했다.
지난 5일, 행운이와 함께 훈련한 8번째 화요일. 그날은 목줄을 메는 것도 몹시 피했다. 닿는 것조차 예민하게 느끼는 듯했다. 산책할 땐 자주 두리번거리거나 멈췄다. 입질을 하려 하기도 했다. 소변을 보려 오래 쪼그려 앉았으나 양은 적었다. 생식기는 부어 있었고, 대변은 설사에 가까웠다.

"얘가 사료도 안 먹고, 토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복지관에서 돌아온 할아버지 말이었다. 이 트레이너는 행운이가 '자궁축농증'이 의심된다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동네 동물병원에 함께 도착했다. 행운이는 덜덜 떨었다. 할아버지는 행운이를 어르고 달랬다. 번쩍 안고 들어 진찰대에 올리고, 초음파를 찍고, 피검사를 했다. 쉼없이 어루만지며 안도하게 했다. 행운이도 고개를 털썩 기대었다. 믿음을 허락한 유일한 사람에게.
예상대로 '자궁축농증' 진단이 나왔다. 다만 염증 수치가 굉장히 높았다. 수술 외엔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웅크린 행운이와, 벼락 같은 말에 움츠러든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진료실 안에 햇빛이 일부 드리웠다. 작은 행복이 계속 허용됐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날 진료비가 15만원. 장 대표와 이 트레이너, 내가 5만원씩 분담했다.
"얼마라고? 아니이, 난 1만5000원으로 들었네. 내가 이래서 병원을 못 왔었지…."
기초생활수급자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몹시 미안해했다. 한 달 수급비는 월 37만원. 이달에 나오면 꼭 갚겠다고 했다. 누구도 그걸 바라진 않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 할아버지에게 걱정이 드리운 게 느껴졌다. 수술해야 행운이가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간절한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집 대문을 행운이와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그저 허릴 깊게 숙여 "오늘 고맙다"고만 했다.
우리 셋은 정글핌피에 모여 어찌할지 논의했다. 수술해야 한단 것엔 이견이 없었다. '비용'이 걱정이었다. 장 대표가 관악구청에 전화해 문의해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동물병원비 올해 예산은 다 소진됐단다.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얼핏 들은 행운이 수술비와 입원비는 200만원이 넘었다.

작은 집에서 서로만 의지하며 맘 졸일 두 존재를 생각했다.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할아버지인 걸 알아채는, 그 소릴 따라 주저없이 달려가 꼬릴 흔들고 매달리는 행운이를 떠올렸다. 결론은 별수 없이 하나로 정해졌다.
"행운이 살려야지요. 수술해줘야지요. 어떻게든 모금을 해서라도요."
설채현 수의사가 수술 잘하는 24시 병원이라며 한 곳을 소개해줬다. 비용 부분도 잘 얘기해보겠다고 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닭 한 마리를 사다가 삶아서 먹이는 중이었단다. 생일에 삶아주던 닭을, 아픈 자식 뭐라도 먹이려 사온 거였다. 어려운 형편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장 대표 전화를 받은 거였다.
수술비 걱정하지 말라고, 행운이 잘 살리겠다고. 장 대표의 그 말에, 할아버지는 수화기 너머로 꺽꺽 울었다고 했다.
다음 날인 6일, 수술 일정이 바로 잡혔다. 무거운 맘으로 정글핌피에 다시 모였다. 회색빛 표정의 할아버지와, 산책인줄 알고 졸졸 따라나선 행운이가 보였다. 이 트레이너 차에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부터 덜덜 떨고 소변을 지린 행운이. 할아버지는 "행운아, 괜찮아. 괜찮아"하며 꼬옥 안고 달랬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해 행운이와 할아버지는 야외 공간에서 진정했다. 몸을 낮춰 앉아 행운이를 달래던 할아버지. 그에게 다가가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잠은 편히 주무셨느냐고. 할아버지가 고갤 저었다.

"행운이가 혹시나 잘못될까봐 마음 많이 쓰셨지요."(기자)
"행운이 걱정도 그렇고요. 우리 행운이 이렇게 수술 받게 해준 게 너무너무 고맙고, 면목 없고 미안해서…."(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웅크린 채 아이처럼 몸을 들썩이며 울었다. 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잘 될 거라고, 행운이랑 오래 사셔야한다고 등을 가만히 토닥여줬다.
행운이가 그런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얼굴을 가만히 대었다. 소소한 표정 변화까지 다 알아채는 녀석이었다. 할아버지가 행운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걱정말아"라고 쓰다듬었다.
행운이 꼬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늘 그랬듯이.


긴 기사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남형도 드림.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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