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버튼, 인디애나의 희망으로 뜬다
‘매 시즌 성장하는 준비된 슈퍼스타, 시간이 지날수록 대박 픽 확신’,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공격 농구를 이끌고 있는 타이리스 할리버튼(23‧196cm)의 시즌초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18경기에서 평균 26.9득점, 12.1어시스트(전체 1위), 4.2리바운드, 1스틸, 0.7블록슛으로 전방위 활약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올 시즌 처음 신설된 ‘NBA 인-시즌 토너먼트’에서는 그야말로 펄펄 날고 있다. 지난 5일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게인브리지 필드하우스에서 있었던 보스턴 셀틱스와의 8강전에서는 무실책 트리플더블을 달성하며 122-112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최강팀 중 하나인 보스턴은 에이스 제이슨 테이텀이 32득점, 제일런 브라운이 30득점을 올리는 등 원투펀치가 함께 터졌다.
하지만 전천후 활약을 펼친 할리버튼을 당할 수는 없었다. 할리버튼은 26득점, 13어시스트, 10리바운드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며 올 시즌 떠오르는 젊은 슈퍼 에이스로서의 존재감을 제대로 뽐냈다. 그 가운데 실책은 한 개도 없었다. 그야말로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활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승부처였던 4쿼터에서 7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집중력이 빛났다. 105-105로 팽팽했던 경기 종료 1분 33초 전 탑에서 브라운을 앞에 두고 3점슛을 적중한데 이어 반칙까지 끌어내며 막판 주도권을 가져오며 보스턴의 추격 의지를 끊어버렸다. 팀내에 확실한 에이스가 있으면 동료들도 더불어 살아나기 마련이다.
할리버튼이 경기를 지배하자 슈터 버디 힐드(30‧193cm)가 21득점, 센터 마일스 터너(27‧211cm)가 17득점을 올린 것을 비롯 총 7명의 선수가 두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막강화력을 뿜어냈다. 이날 인디애나는 보스턴에 리바운드 갯수에서 56-41로 밀렸지만 포스트에서의 열세를 소나기 외곽슛으로 메웠다. 3점슛 40개를 던져 그중에서 19개를 적중시키며 보스턴 수비진을 넉아웃 시켜버렸다.
테이텀과 브라운의 보스턴을 침몰시킨 할리버튼이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야니스 아데토쿤보와 데미안 릴라드의 밀워키 벅스였다. 8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서 진검승부를 펼쳤고 결국 128-118로 승리했다. 이번에도 할리버튼은 27득점. 7리바운드, 15어시스트로 날아올랐다. 놀라운 것은 역시나 턴오버가 한 개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4쿼터 7번 포함 16번의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되던 이날 경기에서 할리버튼은 4쿼터 2분여를 남겨둔 시점에서 드라이브인 공격을 성공시키며 5점차까지 달아났다. 이후 종료 49.1초전 스텝백 3점슛을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최근 동반 상승세인 터너 또한 26득점, 10리바운드로 힘을 보탰다. 아데토쿤보가 37득점, 10리바운드로 이름값에 걸맞는 경기력을 펼쳤으나 뜨겁게 솟구친 인디애나의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만약 인디애나가 LA 레이커스마저 결승전에서 격파하고 초대 우승을 차지할 경우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듯 하다. 인디애나는 1976년부터 NBA에서 뛰기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대표적 무관 팀이다. 파이널 우승은 아니지만 토너먼트 챔피언이라도 차지하게 된다면 해당팀 팬들이 느끼는 감정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ABA시절에는 무려 3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신흥 명가였지만 NBA에서는 다른 명문 팀을 빛내주는 강한 조연 정도가 고작이었다.
2000년 파이널 진출이 팀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일 정도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나쁘지 않은 인기와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레지 밀러 때문이다. 마이클 조던 시대를 겪은 NBA세대라면 밀러를 모르는 팬들은 없을 것이다.
밀러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시카고 불스 왕조에게 치열하게 저항했던 당시 인디애나의 간판스타였다. 원클럽맨이나 상징성, 인기 등을 고려하면 팀 역사상 최고의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소 깡마르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전투 근성이 끓어오르던 투지의 사나이였으며 특히 클러치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3점슛은 상대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패색이 짙던 경기를 엄청난 승부 근성과 폭발력으로 단숨에 뒤집어버린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그로인해 ‘밀러타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역대 최고의 3점슛 마스터 스테판 커리가 나오기 전까지 상당수 팬들은 3점슛하면 밀러를 떠올렸을 정도다. 18년 선수 생활 동안 인디애나 원클럽맨으로 1,839경기를 뛰면서 평균 18.2득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 47.1%의 야투율을 기록했다.
슈터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실상 최초의 인물이다. 인디애나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였던지라 그의 백넘버였던 31번은 당연스레 영구결번이 되었다. 현재 인디애나는 밀러 포함 5개의 영구결번(전구단 영구결번 빌 러셀 제외)이 있다. 아쉽게도 나머지 4인은 NBA보다는 ABA에서 족적을 남긴 전설들이다.
조지 맥기니스는 2차례의 ABA 챔피언이자 1973년 ABA 플레이오프 MVP, 1975년 ABA MVP다. 멜 다니엘스(ABA 우승 3회, ABA MVP 2회)와 로저 브라운(ABA 우승 3회, ABA 플레이오프 MVP 1회) 역시 ABA 시절 인디애나 왕조의 주역들이며 바비 레너드는 당시 감독이다.
밀러가 은퇴한지도 어느덧 20년이 다되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인디애나하면 밀러부터 떠올린다. 그만큼 밀러가 대단한 선수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의 그림자를 덮을만한 또 다른 스타가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밀러 이후 인디애나는 전국구 스타를 배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할리버튼이 범상치 않은 활약을 이어가며 인디애나의 간판스타는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명으로 발돋움할 듯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인디애나에서 데뷔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프랜차이즈 스타로는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한창 젊은 나이에 인디애나로 왔고 이제 막 전성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오랜 시간 동안 지금처럼 활약해준다면 사실상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도만타스 사보니스(27‧208cm)를 내주고 데려올 때까지만 해도 할리버튼이 이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이기는 했으나 올 시즌 활약은 이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타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2020년 드래프트 때 그를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2순위에 뽑혔지만 현재의 활약상은 당시 1순위 앤서니 에드워즈(22‧193cm) 못지않다. 진작부터 차세대 슈퍼스타감으로 불리던 에드워즈도 기대에 걸맞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올 시즌만 놓고 보면 외려 할리버튼이 앞서고 있다.
버튼은 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경기운영이 돋보이는 리그 탑 플레이메이커다. 패싱 센스가 뛰어나면서도 턴오버 수치가 적다는 점은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거기에 안정된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득점 리더 역할까지 하고 있는지라 젊은 나이까지 감안했을 때 날이 갈수록 가치가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버튼이 밀러의 뒤를 이어 인디애나에서 자신의 시대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