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건물 절반 파괴…거주 못하게 해 주민들 추방 방침?[딥포커스]

박재하 기자 2023. 12. 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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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건물 파괴해 살지 못하게 만드는 '도미사이드'
'반인도 범죄'로 분류되지는 않아…가자인들 '강제이주' 의심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고 무너진 건물들 잔해 사이로 주민들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2023.12.04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두 달째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의 주택을 일부러 파괴해 거주할 수 없게 만드는 이른바 '도미사이드'(domicide)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민간 거주 지역 밑에 터널을 만들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거주 불가능한 구역으로 만들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추방하려는 계획을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내 주택의 3분의 1 이상이 파괴되면서 국제법 전문가들은 도미사이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라파 지역에서 아이를 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무너진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2023.12.04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유엔은 지난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전쟁이 시작된 후로 가자지구 내 주택 45%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하마스 측은 60%가 파괴됐다고 주장한다.

BBC가 가자지구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29일 기준 가자지구에서 파괴된 건물이 9만8000여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전쟁 초기부터 공습을 퍼부은 가자지구 북부의 경우 전체 건물의 47~59%가 파괴됐으며 현재 이스라엘이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남부 중심도시 칸 유니스는 이미 10~15%가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가자지구 내 하마스 대법원과 의회 청사는 물론 339개의 교육 시설, 167개의 예배당이 완전히 파괴됐거나 부분적으로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가자지구 북부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 농경지 등도 폭격당하거나 이스라엘군 불도저로 파헤쳐져 황폐화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람들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며 3일(현지시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23.12.03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이처럼 가자지구 건물 다수가 무너져 주민들이 온전히 거주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서 일각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도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발라크리쉬난 라자고팔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지난달 유엔총회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며 "민간인 주택과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도시 전체를 민간인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드는 행위는 전쟁 범죄다"라고 밝혔다.

이런 비판에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민간 시설 밑에 터널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라자고팔 보고관은 적대세력이 민간 주택을 점거했을지라도 이에 대한 공격이 다수의 피난민과 사망자 발생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자위권을 주장할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가자지구 외에도 시리아 내전 당시 파괴된 알레포와 러시아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미얀마 군부가 파괴한 로힝야 난민촌 등도 도미사이드 피해 사례로 언급했다.

10일(현지시간) 가자 지구를 위성으로 찍은 모습(위쪽)과 21일 가자 지구를 찍은 모습을 비교한 사진. 2023.10.26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도미사이드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근간이 된 로마 규약 상 전쟁 범죄로 분류되지만, 이보다 넓은 개념인 반인도 범죄에는 해당되지 않아 국제법상 공백이 존재해 처벌 근거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쟁 범죄의 경우 국가 와 국가 간 전쟁의 경우에만 해당되지만 이보다 넓은 개념인 반인도 범죄는 비국가 행위자가 개입한 분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간인 피해도 포괄한다.

이에 라자고팔 보고관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국제적 분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라며 "이런 국제법상 공백을 해소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도미사이드를 기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건물 파괴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지구에서 내쫓기 위한 은밀한 계획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 10월에는 이스라엘이 전쟁이 마무리 되면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담은 문서가 유출된 바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을 내쫓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좌절시키려는 구상이다.

지오라 에일랜드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도 이스라엘 매체 예디오스 아흐로노트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일시적·영구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라며 "가자지구에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가자지구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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