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암각화는 고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사진

조인원 기자 2023. 12. 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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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순간 22. 강운구의 암각화 사진전
순광으로 촬영된 암각화. 탐블르이, 카자흐스탄, 2017 / 사진가 강운구

‘암각화가 어디 보여?’ 암각화를 보러 울주군 반구대를 가보면 실망부터 한다. 사진으로는 바위에 새긴 고래와 동물들이 또렷이 보이지만 막상 현장에 바위 앞에선 그림을 찾기 어렵다. 사실 신석기시대 그림이 희미한 건 당연하다. 그래도 암각화를 보고 싶다면 햇빛이 비스듬히 비추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강운구 사진가는 최근 전시 중인 자신의 암각화 사진전에서 암각화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알려주었다. “기운 햇살은 색 온도가 낮아 붉은색이 두드러진다. 카메라 화이트밸런스를 데이라이트에 맞추고 암각화를 그늘에서 찍으면 청회색으로, 햇빛에서 찍으면 붉은색을 띤다”고 했다. 세계 최초의 고래잡이 그림인 반구대 암각화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1971년 모두가 놀랐을 때 신문에서 암각화 사진을 보고 사진가는 궁금했다. ‘고래가 왜 수직으로 서 있지?’

세계 최초의 포경(고래잡이) 그림인 반구대 암각화. 음각 안에 양각으로 작살과 새끼의 모습까지 묘사한 기법은 한층 고도의 암각화 기법이다. 반구대, 한국, 2019/ 사진가 강운구

50년 전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가서 본 사진가는 그동안 동시대 사람들이 살던 모습이나 사라져가는 집들을 찾아다녔다. 이후 과거 역사 속에 기록된 불상이나 흔적을 해석해서 사진으로 기록했다. 강운구는 이번 사진전 ‘암각화 또는 사진’이 그 연장 선상에서 거꾸로 가장 먼 기록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기록한 암각화를 통해 추적했다”고 했다. 선사시대 바위가 하드디스크라면 그 시대에 그려진 암각화는 사진인 셈이다.

사진가는 지난 2017년부터 3년간 반구대 암각화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몽골, 러시아, 중국 등 8개국을 다녀왔다. 수천 년에 걸쳐 제작되었으니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을까? 그중 수백 년 된 최근(?) 암각화는 제외했다. 미국 유타주나 하와이 암각화들이 여기 속한다. 암각화들 99%가 동물이면 1%가 사람인데 사진가가 촬영한 암각화의 사람만 1천명이 넘고, 그중 10% 사진들만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했다.

암각화 형상을 잘 보이게 하려고 사진가는 일부러 역광으로 촬영해서 바위는 하얗게 처리하고 암각화는 검게 보이도록 했다. 사이말루 타시, 키르기스스탄, 2018 / 사진가 강운구

강운구의 암각화 사진전 소식을 들었을 때 사진가의 ‘경주 남산’ 사진들이 떠올랐다. 과거 그가 촬영한 경주 남산의 돌부처들 사진을 보고 부처 얼굴에 비춘 빛의 오묘함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흑백사진 속 불상을 살아있는 표정으로 보이게 한 건 순전히 광선 때문이었다. 지난 6일 사진 전시장에서 사진가를 직접 만나 물어보았다. 다음은 강운구가 들려준 암각화 사진 이야기다.

빛을 기다린다는 것

오래전 잡지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사진가를 시작하면서, 일이 없어서 내가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만들려고 경주 남산을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어보고 시작했다.

경주 남산은 1990년대 초반 2년을 작업했다. 당시 초판이 나온 출판사(열화당)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책을 만들려고 사진을 고르는데 영 사진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내가 사진을 너무 잘 찍으려고 힘을 준 게 보였다. 유연성이 떨어져서 마음에 안 들어 출판사에 “이거 책 못 내겠다”하고 2년 넘게 촬영한 필름을 몽땅 버렸다. 너무 잘 찍어서 구도가 뻣뻣한 것이 보였다.

사진가들은 피사체에 맞춰야 사진이 자연스러운데 앵글 안에 피사체를 맞추면 대부분 사진에서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마음을 편히 먹고 촬영해야 더 잘 보이고 근사하게 나온다. 시간을 버리고 난 다음에 깨달은 것이다.

사이말루 타시, 키르기스스탄, 2018/ 사진가 강운구

누구나 처음에 열심히 할 때는 그것만 집중해서 찍는다. 그런데 지나면 한발 물러설 것을 하고 후회한다. 가령 남산 사진에서도 감실(불곡마애여래좌상)의 부처도 일 년 중 동지 즈음에만 찍을 수 있는 햇빛을 기다려야 하는 사진이다. 어떻게 해도 햇빛이 안 드는 데 있으니 동짓날 해가 가장 길 때 촬영할 수 있다. 해가 가장 낮게 뜨는 동지 근처에 가면 해가 잠깐 드는 순간이 있다. 90년대 초반이었으니 지금처럼 화소가 좋은 디지털카메라가 있지도 않았고 린호프(Linhof) 같은 대형카메라에 무거운 삼각대를 들고 5년 동안 수백 번도 더 오른 곳이 경주 남산이었다. 그 시절 필름을 버리고서 깨달은 것들로 이번에 암각화를 두드러지게 찍을 수 있었다.

바위에 광물질을 함유하고 표면으로 나오려면 수만 년이 걸리는데 녹을 파티나라고 한다. 동에 스는 녹을 파티나(Patina)라고 한다. 파티나는 동에 녹이 쓰는 것으로 동록(銅綠)이다. 바위에도 마그네슘이 나오면 까매지고 긁으면 하얗게 된다. 암각화 그림들은 모두 파티나가 있는 돌이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순광이면 돌이 까맣고 그림이 하얀데 사진을 대부분 역광으로 찍어서 바위가 하얗고 그림이 까맣게 찍혔다. 일부러 바위에 그림들이 잘 드러나게 보이려고. 전 세계 대부분의 암각화들은 아무 바위에 그리지 않고 파티나가 있는 바위에 그려진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도 파티나가 있었지만, 층이 얇아서 씻겨나갔을 것으로 예상한다.

순광으로 촬영된 암각화. 사르미시사이, 우즈베키스탄, 2018/ 사진가 강운구

암각화를 찾아서

반구대 암각화가 1970년에 신문에 났을 때, 고래가 수직으로 그려진 암각화를 보고 가보니 옆으로 누운 고래가 있었는데 죽은 고래 모습이었다. 암각화에서 수직과 수평은 삶과 죽음의 개념이었다. 반면 네 발 달린 호랑이는 네 발로 서서 수평으로 있는 모습이 살아있는 것이고 서 있는 모습이 죽은 형태였다.

2017년도에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내 사진전이 있어서 갔는데, 언젠가 암각화가 있다는 지역을 기사 스크랩에서 봐서 방문하고 탐불르이를 찾아가서 보고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결국 반구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암각화를 보고 왔더니 보이더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을 8개국을 다녀왔다. 암각화 100개 중 99개는 동물이었고, 사람만 찍었고 천 명 정도 찍었고, 그중에 100명 정도만 추린 것이 이번에 전시에 나온 사진들이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오기 전에 끝나서 마무리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다녀온 사진을 정리해서 이번에 낸 책에는 300장, 전시회는 151장의 사진이 있다.

암각화는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각 지역마다 천재가 그린 그림이 있고, 그때에도 유행이 있었는지 다른 그림들은 따라 그렸을 것이다. 2천km가 떨어졌는데도 같은 그림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보고 가서 그려진 것도 있으리라고 추정하지만, 그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바위에 날카로운 것으로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무당(샤먼)이었고, 그 시대의 지배자였을 것이다. 처음엔 제의만 있다가 나중엔 오락도 보인다.

사이말루 타시, 키르기스스탄, 2018/ 사진가 강운구

암각화가 몰려있는 지역을 가보면 중심 암벽이 있고, 모두 거기에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먼저 그린 그림은 후대에서 거의 손대지 않고 다른 곳에 그렸다. 반구대 암각화는 자신이 본 것만 그린 시대였고 그보다 후대인 천전리 암각화는 못 보던 그림도 그려서 도형도 보이는 것이다.

암각화의 크기를 보여주려고 사진 속에 주변 환경들을 프레임에 넣어서 촬영했다. 전시 중간에 컬러사진으로 풍경들을 보여준 것은 그 암각화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넣은 것이다.

독자적으로 자생해서 그려진 암각화가 대부분이다. 중앙아시아의 사슴의 뿔을 그리면서 과장해서 멋을 부렸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직선으로 자연스럽게 그렸다. 반구대는 청동기 후기에 그려진 것인데도 바퀴 그림이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면 자생적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지역의 암각화를 보니 저절로 깨닫게 된 것이다.

암각화가 그려진 청동기시대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짧았을 것이다. 국가도 없었고. 조선시대 평균수명이 40대라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전이었으니 서른 살도 넘기기 어려웠고, 선사시대에는 10대나 20대 사람들이 어른이었고, 그들이 그린 것이다. 10대나 20대의 눈으로 그림을 보면 다시 보인다. 남녀 간 성행위가 암각화에 묘사된 것을 지금 보면 포르노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겼으리라.

긴 뿔의 소 위에 있는 빛나는 얼굴의 모습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으로 신격화된 샤먼을 가리킨다. 탐갈르이와 탐블르이, 카자흐스탄, 2017/ 사진가 강운구

카메라는 디지털 라이카, 소니, 아이폰으로도 찍었다. 전부 디지털 카메라였기에 가능했다. 필름 몇백 롤을 그 험한 지역에서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옛날 필름 시절이면 아껴 찍고, 늘 노심초사했는데 지금은 노출이 안 맞아도 조정하기 좋은 보정 프로그램도 있지 않은가.

사실 찾아갔던 암각화 지역이 험한 곳이 많았다. 국경의 산악지역이 많아서 집마다 총이 있었다. 사람들은 순박해서 음식도 주고, 그랬지만 언제든 장비를 잃어버릴지 몰랐다. 카메라를 뺏겨도 되지만 찍은 사진은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왼쪽 주머니에 새 SD카드를 넣어서 다녔다. 새것을 줄 테니 내가 찍은 사진이 담긴 카드는 달라고 하려고.

어떻게 암각화의 연대를 예측하나?

방사선동위원소로 측정하면 바위 나이만 알지 암각화가 새겨진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림 자체의 형태만으로 판단하고 있다. 암각화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1대 학자들이 지금 90대인데 모두 생존해 있다. 50년 전에 러시아 학자들이 조사된 게 많이 있는데, 번역본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사실은 러시아 자료들이 제일 많았다. 미국의 암각화들은 대부분 기원후에 그려진 것이다. 하와이에 그려진 것은 3백 년 전, 유타주도 5백 년 전 그림이다. 나는 주로 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 전후로 제작된 암각화를 찾아다녔다.

강운구의 암각화 사진전 <암각화 또는 사진>은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내년 3월 17일까지 열린다.

사진 위쪽 누운 사람의 몸이 붉은 컬러를 칠한 것이 남아있는 비교적 후대에 그려진 암각화로 위구르인의 정면 얼굴이 묘사되어 있다. 역삼각형의 몸통은 여자를 상징한다. 캉지아시멘치, 중국, 2019/ 사진가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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