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초거대 방산 박람회장 ‘팔레스타인’[책과 삶]
분쟁지서 검증·홍보된 무기들
이스라엘을 10대 무기 수출국으로
팔레스타인 실험실
앤터니 로앤스틴 지음 | 유강은 옮김|소소의책|356쪽|2만3000원
지난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며 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외신들은 최고 수준의 정보력과 기술력을 지닌 이스라엘의 안보기관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꼬집었다. 가디언은 “ ‘페가수스 스캔들’에서 확인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감시 기술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공격 대비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방공망 아이언돔이 무너진 것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침공 후 보란 듯이 아이언돔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하마스가 쏜 로켓을 격추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밤하늘을 가르며 수놓는 듯한 모습이 화려한 ‘에어쇼’를 보는 것 같았고, 관련 이미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됐다.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전 세계인이 잘 알고 있다. 정교한 타기팅, 뛰어난 기술과는 거리가 먼 공격이 가자지구에 가해졌다. 민간인, 아이들, 병원이 무차별적으로 폭격당하고 시신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페가수스 스캔들’은 이스라엘의 보안기업 NSO가 만든 스파이웨어 페가수스에 얽힌 일이다. 2021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상급 인사 14명의 휴대전화가 페가수스로 해킹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페가수스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 인권운동가들의 휴대전화를 광범위하게 해킹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페가수스는 이전에도 경악 섞인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정부 언론인이 튀르키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되고, 시신은 사라진 충격적 사건의 배후에 페가수스가 있었다. 사우디 정부가 페가수스를 이용해 살해당한 언론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한 것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 실험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감시·통제하고 저항을 진압하면서 군사·보안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주요한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수출하는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스라엘은 2021년 무기 판매액 113억달러를 기록한 세계 10대 무기 수출국이다. 이를 떠받치는 것은 민간인 감시와 통제, 불법적 휴대전화 해킹, 폭격과 표적 암살에 사용되는 드론, 이민과 난민을 막기 위한 감시탑과 장벽 등이다. “이스라엘은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장비를 사용해보고 ‘전장에서 시험한’ 무기라고 홍보하면서 세계 최고의 무기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 실험실은 이스라엘의 독보적인 홍보 포인트다.”
무신론자 유대인인 앤터니 로앤스틴은 독립 언론인으로 20년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잔인하고 비열한 행태를 비판해왔다. 책은 그동안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던 문서를 공개하고 피해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의 목소리를 담아 이스라엘이 악명 높은 독재정권, 학살자들과 어떻게 협력해왔는지를 밝힌다. 300쪽이 넘는 분량의 매 쪽이 통렬하고 충격적인 고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지금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실상을 이해하게 돕는 적나라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은 “230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에 영원히 수용해두고도 아무 부작용이 없을 거라는 믿음에 일격”을 가한 일이며, 이스라엘이 지금도 신무기를 현장 시험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SNS에 전시하며 글로벌 바이어들과 국내외 이용자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군사산업은 1948년 이스라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팔레스타인이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르는 추방이 이뤄졌다. 팔레스타인인 190만명 가운데 75만명이 강제로 쫓겨나 난민이 되었고, 531개 마을이 파괴되고 1만5000명이 살해됐다. 1950년대 이스라엘 정부 소유 방산기업이 발전하고 1960년대에는 민간기업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스라엘 최대 민간 무기 제조업체 엘빗도 그때 기반을 다졌다.
이스라엘은 ‘돈’이 된다면 거래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반유대주의 정책을 펼치고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고문한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과 같은 독재자와도 기꺼이 거래했다. 칠레의 피노체트,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등 유명한 독재자들이 이스라엘의 무기를 수입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남아프리카공화국, 후투족이 투치족을 상대로 제노사이드를 벌인 르완다도 계약 상대였다. 이스라엘은 “세계의 깡패들”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유럽연합(EU), 유엔, 캐나다 등 서방과도 적극 거래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방위산업이 민영화되고, 새로운 감시·통제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등장하면서 ‘점령의 민영화’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도 파헤친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기업 애니비전은 다양한 카메라로 요르단강 서안 전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시한다. 이는 이스라엘 검문소 수십곳에서 진행되는 인공지능(AI)의 생체 인식 및 안면 인식과 통합된다. 책은 이스라엘 방위군 정보기관인 유닛 8200에서 첩보, 해킹 등을 좋아하는 ‘엘리트 신병’들을 이용해 개인들을 염탐하고 감시하며, 유닛 8200 출신 군인들이 민간으로 나가 첩보와 해킹 산업을 발전시키는 실태도 고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스라엘에 또 하나의 기회였는데,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감시·추적 시스템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군사력을 홍보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검열했다. 수백개 게시물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삭제됐다.
저자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보 숨기기, 관련 기업들의 비협조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스라엘 군사산업의 실체를 추적한다.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일들, 또 이스라엘을 통해 은밀하게 해외로 수출되는 군사·감시 기술들을 보면 ‘감시사회’의 악몽을 보는 듯하다. 암담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와 불법행위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스라엘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비판과 견제도 시작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인권변호사 에이타이 맥은 “세계 곳곳에 죽음과 비참을 파는 것은 최악의 유산이 되리라는 점을 많은 이스라엘인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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