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에 퇴짜맞고 호주선 “화웨이요?”…한화의 레드백 성공 뒷이야기 [비즈360]

2023. 12.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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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호주와 ‘레드백 장갑차’ 최종 계약
“맞춤형 기획·개발 제품의 첫 수출 결실”
한국군 시범운용 당시 레드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한 궤도형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이 마침내 호주 대륙을 달리게 됐다. 이번 레드백 수출은 맞춤형으로 기획 개발한 제품으로 방산 선진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로 미국, 영국, 독일 등 쟁쟁한 방산 선진국을 제치고 성사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호주법인(HDA)은 호주 국방부와 레드백 129대 등을 공급하는 3조1649억원 규모의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국내에서 전력화되지 않은 무기체계를 업체 주도로 새로 개발해 선진시장에 공급한 첫 사례다.

한화가 호주의 보병전투장갑차 도입사업 도전을 처음 검토한 건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7년. 당시 한화는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었다. 그때까지 어떤 무기체계도 호주군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었던 터라 내부에서도 “가능성이 적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치열한 논의 끝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도전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화 측은 회고했다.

2018년 한화는 오세아니아 지역 최대 방산 전시회인 ‘랜드포스(Land Forces) 2018’에 참가했다. 이곳에서 랜드400 3단계 사업에 대한 사업 설명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시 한화는 레드백의 도면조차 없었던 때였지만 35분의 1 크기의 미니어처 검은색 모형만 가지고 당당히 전시회로 향했다.

당시 한화는 글로벌 업체와 협력을 통한 사업 수주를 꾀했다. 현지 사업 설명회에는 영국 BAE시스템즈, 독일 라인메탈, 미국 록히드마틴, 제너럴다이내믹스 등 굴지의 방산업체가 모였고 한화는 라인메탈 측에 컨소시엄 형태의 사업 참여를 권했다. 그러나 라인메탈 측은 “찾아와줘서 고맙지만 잘 해보라”며 한화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럴 바에 우리가 직접 만들자.” 한화의 선택은 포기가 아닌 도전이었다.

랜드포스2018 첫 참가 당시 레드백 모형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퇴짜를 맞은 한화는 바쁘게 움직였다. 201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사업 참가 준비와 설계에 돌입했다.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이듬해 3월 사업제안서를 제출했다. 레드백은 그렇게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의 ‘에이젝스’, 영국 BAE시스템스의 ‘CV90’, 독일 라인메탈사의 ‘링스’와 경쟁하게 됐다.

이번 도전에서 가장 큰 벽은 한화의 국제적 인지도였다고 사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화를 설명하기 위해 회사 소개 자료를 늘 지니고 다녀야 했다. 발음이 중국 업체랑 비슷해 한국 회사라는 점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 번은 호주 정부 담당자가 한화를 ‘화웨이’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 9월 라인메탈과 최종 경쟁 후보로 선정된 이후에는 혹독한 현지 테스트가 이뤄졌다. ‘호주 측이 차체를 완전히 망가뜨리려고 작정을 했구나’ 싶을 정도였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가혹한 테스트에 궤도가 빠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으로 30분 만에 궤도를 재장착하는 등 경쟁사보다 신속하게 대처하는 데 주력했다.

레드백은 열세였다. 라인메탈의 경우 호주의 바퀴형 장갑차 도입 사업을 수주해 유리한 고지에 있었던 반면 레드백은 실전 배치된 적조차 없었고 첫 시제 차량도 최종 후보 결정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야 완성한 상황이었다.

이에 한화는 과감한 현지 생산 조건을 제시했고 신속한 납기 준수와 적극적인 테스트 지원, 약속 이행 등이 부각되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다음 사업을 하게 된다면 한화랑 하고 싶다’는 호주 내 협력업체의 지원사격도 한몫했다는 전언이다.

현지 법인 관계자는 “테스트 과정에서 호주군의 요구 사항이 있으면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켰다”며 “호주군에게 한화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믿음이 생겼고 이러한 신뢰가 최종 계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계약에 따라 레드백 129대를 2028년까지 순차 공급할 예정이다. 레드백은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시에 K9자주포 생산을 위해 건설 중인 한화장갑차첨단센터(H-ACE)에서 함께 생산된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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