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올타임 레전드에서 배신자로…시체 꺼내 목까지 잘랐다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입력 2023. 12. 9.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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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50] 잉글랜드의 전설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할 때면 누구보다 먼저 적진을 뒤엎었습니다. 불리한 전세에도 병사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용기를 냈습니다. 그와 함께라면 군사들은 무적이라고 느꼈지요. 구름떼처럼 모인 적군도 그의 이름을 들으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중세 잉글랜드의 위대한 장군 ‘헨리 퍼시’입니다.

토트넘의 해리 케인(왼쪽)이 지난 8월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샤흐타르 도네츠크와 친선 경기에서 골을 넣고서 손흥민과 함께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코틀랜드·아일랜드가 아직 잉글랜드에 복종하지 않았을 시절입니다. 헨리 퍼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용맹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전사들도 그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어찌나 전장을 열심히 누볐는지, 그의 말에 끼워진 ‘박차(spur)’는 늘 뜨거웠다(hot)고 전해집니다. 그의 별명이 ‘핫스퍼 경’인 이유이지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 토트넘 홋스퍼가 그의 이름에서 구단명을 따왔습니다.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안윅에 있는 헨리 핫스퍼 동상. <저작권자=Stephencdickson>
명성은 화무십일홍이었습니다. 그가 죽자마자 잉글랜드 왕에 의해 부관참시 당했기 때문이지요. 그의 사체는 무덤에서 꺼내져 목이 잘렸습니다. 죽어서도 편히 잠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국의 영웅에서, 더러운 배반자까지. 헨리 퍼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어쩌다 그의 이름이 토트넘에 남은 것일까요. 파란 많은 그의 삶을 들어봅니다.
스코틀랜드 국경에서 태어난 ‘전사 중의 전사’
“그의 박차는 늘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헨리 퍼시는 1364년 5월, 노섬벌랜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스코틀랜드 국경에서 6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입니다. 항상 양국간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장’(戰場)에 가까웠습니다.

헨리 퍼시가 태어나기 고작 30년 전에 가문이 소유한 성 워크워스가 두 번의 침공을 받았을 정도였지요. 헨리 퍼시는 태어나자마자 ‘전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체화해야 했습니다. 가문을 위해서라도, 조국 잉글랜드를 위해서라도.

“내 뜨거운 박차를 따르라,.” 헨리 핫스퍼. 1910년 작품.
헨리 퍼시는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부응했지요. 전사적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14살의 나이에 기사 작위를 받고 전장에서 활약합니다. 가문의 수문장이자, 잉글랜드의 수비수로 제 몫을 다했지요. 1385년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2세가 스코틀랜드 원정을 갈 때에도 그에게 동행을 청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나이 고작 19살이었지요.
헨리 퍼시의 집이었던 워크워스 성. <저작권자=Draco2008 from UK>
첫 원정부터 스코틀랜드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살인 기계와 같은 모습이었지요. 말을 타면서도 자유로이 칼을 휘두릅니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스코틀랜드인들이 붙여준 별명이 ‘핫스퍼’였었지요.

약관의 나이에 벌써 브리튼 섬 전역에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것이었습니다. 당시 퍼시가 프랑스와 ‘100년 전쟁’에서도 활약하게 된 배경입니다. 리차드 2세는 퍼시를 크게 신뢰했기에, 그를 프랑스 내에 있는 잉글랜드 영토 아키텐 공국의 군사책임자로 임명하기도 했었지요.

왕의 권력을 위협한 ‘핫스퍼’
“퍼시 가문을 배제하게.”

군주에게 너무 뛰어난 영웅은 달갑지 않은 법입니다. 귀족들에게나, 백성들에게나 인기가 높았던 퍼시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리차드 2세가 느끼기 시작합니다.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스코틀랜드와의 휴전협상이었습니다.

“퍼시, 우리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 ” 1390년대 리차드 2세 초상화.
리차드 2세가 스코틀랜드와의 국경문제를 독단으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국경을 맞댄 노섬벌랜드의 백작 퍼시는 철저하게 배제됩니다. 헨리 퍼시는 폭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만, 분노를 삭여야만 했습니다. 그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퍼시의 편이었을까요. 리차드 2세에게 보복할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옵니다. 그를 향한 반란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주동자는 ‘헨리 볼링브로크’. 왕족의 일원이자 리차드 2세의 사촌이기도 한 그는 프랑스로 추방당했습니다. 왕의 권력을 위협할만한 명망있는 인사였기 때문이지요. 리차드 2세는 이를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노퍽 공작과 싸움을 트집잡아 국외로 쫓아냅니다. 영지까지 몰수하는 극한 처방까지 내렸지요.

“핫스퍼, 나와 같이 일하지 않겠어?” 16세기 화가가 그린 헨리 4세 상상화.
헨리 볼링브로크는 참지 않았습니다. 영지를 마음대로 처분하는 건 왕이더라도 선을 넘어선 것이었기에 대의명분도 있었지요. 리차드 2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귀족들도 그의 ‘대의’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핫스퍼’ 헨리 퍼시였습니다.

헨리 볼링브로크와 헨리 퍼시. 두 헨리의 만남이었지요. 잉글랜드 최고의 권력자 둘의 조합이었습니다. 마침 리차드 2세는 아일랜드로 군사 원정을 떠난 차였지요. 왕은 자기 왕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핫스퍼만 아니었다면...” 헨리 4세에게 왕관을 양도하는 리차드 2세.
헨리 볼링브로크는 이제 헨리 4세라는 이름으로 왕좌에 앉았지요. 랭커스터 왕조의 시작이었습니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를 ‘장미전쟁’의 서막이라 불렀습니다.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은 ‘빨간장미’, 정권을 탈취한 랭커스터 왕조에 대항해 요크 가문이 전쟁을 벌입니다. 요크의 상징이 ‘하얀 장미’였습니다.)
토트넘의 상징으로 떠오른 헨리 퍼시
‘핫스퍼’ 퍼시는 헨리 4세에게 중용 받았습니다. 개국 공신인 데다가, 군사적으로도 잉글랜드 북부 국경을 튼튼히 지켜주었기 때문이지요. 헨리 4세 치하 웨일즈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것도, 스코틀랜드와의 호밀던 힐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 역시 ‘핫스퍼’ 헨리 퍼시였습니다.
영국 런던 토트넘 지역 인근에는 헨리 퍼시의 영지가 있었다. 축구팀 토트넘에 홋스퍼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다. 사진은 토트넘의 구청사. <저작권자=Alan Stanton>
헨리 4세는 그에게 런던 인근 지역에 영지를 내리기도 했었지요. 런던 기반 축구팀 토트넘이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 인근 지역 영주인 ‘핫스퍼’ 이름을 따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헨리 퍼시가 가장 좋아했던 싸움닭 역시 팀 엠블럼으로 삼았습니다. 토트넘과 헨리 퍼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셈입니다.
또 다시 역모에 휘말린 헨리 퍼시
반골기질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기 때문이었을까요. 헨리 4세와 퍼시와의 불화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퍼시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뒀는데도 불구하고, 헨리 4세가 약속한 포상금을 주지 않아서였습니다.
“헨리 4세, 당신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오?.” 영화 ‘더 킹’은 헨리 5세와 라이벌인 ‘핫스퍼’ 헨리 퍼시가 등장한다. 헨리 퍼시 역을 맡은 배우 톰 글린 카니. <사진 제공=IMDB>
퍼시 가문이 오랜 시간 바라 온 땅 컴벌랜드는 라이벌 가문에게 하사 되었지요. 반발한 퍼시는 스코틀랜드 포로들을 자신에게 넘기라는 헨리 4세의 요구에 불응합니다. 리차드 2세와 겪었던 불화가 헨리 4세와도 재점화된 것입니다. 전운이 다시 감돌았습니다.

헨리 퍼시는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헨리 4세의 반란에 의구심을 가진 귀족 세력이 많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전투의 신이라 불리는 자기 능력도 맹신했었지요. 랭커스터 왕조에 불만이 있는 세력을 규합해 왕 헨리 4세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헨리와 헨리의 대립.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선 사내들의 대결이었습니다. ‘슈르즈버리’ 전투, 1403년 7월 21일이었습니다.

“이대로 호구처럼 당하고 있을 것이오.” 헨리 핫스퍼(맨 왼쪽)가 동료들과 토론하는 모습. 1784년 작품.
한 나절이 지나고, 헨리의 시체가 뒹굴었습니다. “헨리 4세가 죽었다”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소리칩니다. “우리 왕은 여기 계시다, 죽은 건 헨리 퍼시다”라고요. 전투에서 패한 이는 ‘핫스퍼’였습니다. 헨리 4세와 그의 용맹한 왕세자 아들이 활약한 덕분이었습니다. 헨리 퍼시의 박차는 이제 식어가기 시작합니다.
‘핫스퍼’를 죽이는 헨리 5세. 영화 ‘더킹’의 한 장면. 헨리 5세는 라이벌을 쓰러뜨리고 왕세자로서 입지를 굳힌다. <사진 출처=IMDB>
헨리 4세는 옛 친구에게 예를 다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퍼시의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렸지요. 성대한 장례도 치러줬습니다. 하지만 수년 후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헨리 4세는 잔인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의 시체를 꺼내 전시하고, 목을 잘랐습니다. ‘부관참시’였습니다. 반란자는 죽어서까지 편치 못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었지요.
셰익스피어의 펜으로 영생을 얻다
헨리 퍼시는 한 작가에 의해 영원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셰익스피어였습니다. 그는 사극 여러 편을 썼었지요. 그 중 대표작 하나가 ‘헨리 4세’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헨리 퍼시는 용감무쌍한 기사의 전형이만 왕을 배신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셰익스피어 사극 ‘헨리 4세’에 묘사된 헨리 퍼시 핫스퍼와 퍼시 부인 삽화. 1795년 작품 추정.
헨리 4세의 아들 ‘할 왕자’(헨리 5세가 모델)는 주색에 뼈져 살면서도 결국 대의를 위해 칼을 잡는 인물로 묘사되지요. 한 인물을 진정한 군주로 성장시키는 위대한 ‘빌런’이 핫스퍼, 헨리 퍼시였던 것이지요.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더 킹’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헨리 5세가 전투를 벌이는 이가 바로 헨리 퍼시, 핫스퍼 경입니다.)
기사도의 전형으로 묘사된 헨리 핫스퍼. 1847년 작품.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도 ‘핫스퍼’ 후손
헨리 퍼시는 죽었지만, 그의 후손들은 그만큼이나 영국 역사에서 깊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19세기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윌리엄 왕세자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도 핫스퍼 경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토트넘 홋스퍼의 팬인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토트넘 파이팅).” 2011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미들턴과 윌리엄.
올 시즌 토트넘의 박차(spur)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초반 10경기 기준 무패행진을 달리면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박차가 조금은 식은 모습이지만, 아직 시즌은 중반에도 이르지 않았습니다. 토트넘의 우승을 기원합니다. 손흥민이 박차를 가할 주역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마침 최강 맨시티와의 경기에서도 그 기백을 증명했습니다).
1963년 UEFA 위너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토트넘. 영국에서 유럽 대항전 우승컵을 든 첫 팀이 토트넘이었다.
잉글랜드 토트넘의 공격수 손흥민이 4일 영국 맨체스터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시티와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볼 경합을 펼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네줄요약>

ㅇ한국 최고 인기팀 토트넘 핫스퍼의 ‘핫스퍼’는 중세 잉글랜드 실존 인물 헨리 퍼시의 별명이었다.

ㅇ그는 중세 잉글랜드 최고의 전사였다. 그가 탄 말의 박차(spur)가 뜨거울(hot) 정도로 전장을 종횡무진 누볐기에 ‘핫스퍼 경’이라고 불렸다.

ㅇ그러나 그는 리차드 2세와 헨리 4세에 잇단 반란을 일으킨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ㅇ셰익스피어가 쓴 사극 ‘헨리 4세’에도 핫스퍼경이 묘사돼 있다. 그가 잉그랜드에서 유명인사로 떠 오른 이유다.

<참고문헌>

ㅇ최경희, 기억과 망각의 정치 : 헨리4세 1부에 나타난 국가 통합의 정치학, 서울과학기술대학교,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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