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낮은 범죄율은 ‘인사’를 잘하기 때문일까? [같은 일본, 다른 일본]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의례적인 인사라도 반드시 주고받는 일본의 이웃들
요즘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이웃사촌’은 옛말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에서는 같은 아파트 이웃끼리도 인사를 안 한다”는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외국에서 살 때에는 동네 주민들과 항상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한국에서는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도 딴청을 부리며 눈맞춤을 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당황스러웠다는 것이다. 먼저 인사했다가 미적지근한 반응에 몇 차례 민망했던 그녀는 자기도 인사하지 않는 무뚝뚝한 한 명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실 나 역시 일본에서 귀국한 뒤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같은 동에 사는 주민들과 만나면 늘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같은 층의 주민들과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과 친근하게 교류했다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개인주의가 상당히 팽배한 사회이다. 단순히 가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적인 친분이 깊어지는 경우는 거의 못 보았다. 다만, 형식적이라고 해도 주민들끼리 인사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인사를 생략하거나 상대를 등지려는 태도를 보이면 수상쩍게 보인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런 인사는 친절함에서 우러난 진정한 환대의 행동은 아니다. 형식적으로 주고받는 의례에 불과하고, 까칠하게 말하면 수상한 사람을 걸러내는 ‘감시’의 기능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의례적인 성격이 인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예컨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사람과 의례적이나마 인사말을 주고받는다면, 좁은 공간에 함께 갇힌 상황에 대한 불편함은 줄일 수 있다. 일단 인사말을 통해 서로 해코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확인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전하는 의례적 행동. 이것이 인사의 본질적인 기능일지도 모른다.
◇ 범죄 예방을 위한 ‘인사하기 운동’
일본인이라고 모두 인사성이 밝은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인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는 사람도 있고, 타인과 마주치는 것 그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일본에 인사 문화가 정착한 것은 개개인의 성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교육과 훈련의 결과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실제로 일본에서 인사는 사회생활의 매우 중요한 규범이다. 교육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틈이 날 때마다 인사를 연습하도록 권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을 때 같은 경우에 부모들이 솔선수범해서 인사의 모범을 보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문화를 몸에 익힌다. 일본의 음식점이나 가게에서도 인사에 정성을 기울인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목청을 높여 ‘어서 오십시오!(이랏샤이마세)’라는 인사말을 외치는 것이 일본식 환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사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사례가,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온 ‘인사하기 운동(あいさつ運動)’이다. 인사하기 운동이란 지인뿐 아니라 같은 동네, 같은 지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인사를 하자는 캠페인이다. 예를 들어, ‘오아시스 운동’이라는 구체적인 캠페인도 있다.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시츠레이시마스(실례합니다)’,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이라는, 네 문장의 머리글자를 따서 ‘오아시스’다. 즉 일상 속에서 이 네 문장을 가능한 한 자주 말하자는 권장 캠페인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의외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인사하기 운동의 주요 목적은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데에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대전제는 인사를 권장함으로써 지역의 범죄율을 낮추자는 것이다.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폭넓게 친분을 쌓으면 ‘수상한 사람’을 걸러낼 수 있는 지역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인사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인사하기 운동과 범죄율의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구체적인 수치로 검증된 결과는 본 적이 없다. 다만 일본 경시청이 인사가 범죄율을 낮춘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조사 결과를 종종 발표했다. 예를 들어 빈집털이 범인은 ‘누군가 말을 걸었을 경우’에 범행 계획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좀도둑이 범행을 포기하는 가장 큰 요인이 ‘가게 점원의 반가운 인사’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친근하게 말을 걸거나 인사를 건네는 행동이 범죄의 동기를 직접적으로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편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쓴 ‘나 홀로 볼링’이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에 미국에서 지역 사회의 느슨한 연대가 눈에 띄게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범죄율이 급속히 상승했다. 지역 공동체의 약화가 범죄율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지역의 연대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범죄율을 낮춘다는 해법도 제법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범죄 예방과는 무관하지만, 인사하기 운동이 지역 공동체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청소년들에게는 지역 참여 의식을 높이고, 중장년층에게는 젊은 세대와의 의사소통의 기회를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인사를 권장하는 데에 굳이 이유가 필요하겠나 싶기도 하다.
◇한국의 거리에서 사라진 인사, 가게에서는 과도한 환대
많은 일본인을 포함해 내가 만난 외국인 중에는 “한국인은 인사성이 밝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친절하다”는 애매한 평가가 많았다. 많은 한국인이 스스로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라고 자부하지만, 조상이나 친척 어르신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인사성이 밝은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외부인에게는 다소 냉랭해도 같은 동네나 아파트 단지의 이웃들끼리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친분을 쌓는 분위기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년 넘게 일본에 살다가 돌아와 보니, 한국 사회가 인사에 부쩍 인색해졌다. 동네나 거리에서의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대뜸 말을 걸었다가 이상한 부탁이나 권유를 하는 수상쩍은 인물로 오해받기 쉽다. 요즘은 아이들에게도 “동네 어른에게 인사하라”기보다는 “낯선 사람은 피하라”고 당부한다고 할 정도이니, 겉으로 드러내 말하지는 않아도 타인을 적대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백화점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영업점에서 고객에게 보이는 환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도해졌다. 언제부터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는 ‘배꼽 인사’가 최상급 환대의 상징이 되었단 말인가? 동네에서의 자연스러운 인사 습관은 사라지고, 소비자에게 지갑을 열어달라고 유혹하는 매뉴얼 속 제스처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풍토가 개인의 탓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스스로 냉랭하고 고독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현실이 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인사가 사라진 사회를 허투루 생각할 것은 아니다. 일본처럼 인사하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까? 걱정스럽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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