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굴 먹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한은형 소설가 2023. 12. 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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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은형의 밤은 부드러워, 마셔] 프티 샤블리
다진 샬롯과 샴페인 식초, 다진 차이브, 그 위에 레몬을 뿌린 생굴 요리에는 프티 샤블리가 어울린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얼마 전에 들은 ‘미친’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한겨울에 굴 먹는 방법’. 모름지기 굴이란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콧구멍으로 흡입하면서, 또 콧김을 내뿜으면서 야외에서 먹어야 한다는 거였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게 한스럽고 또 그렇게 찬바람을 폐로 들이켜면서 먹는 굴이 얼마나 맛있을지 알 것 같아서. 세상에는 그런 게 있는 것이다. ‘좋다’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미치게 좋은 것들이.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두개골이 얼얼해진다. 나도 콧구멍의 존재함에 감사를 표하며 굴을 먹고 싶어서. 맵싸한 공기가 좋아서 얼굴이 땡땡 얼더라도 겨울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굴과 먹는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는 위험한 것이다. 반성도 했다. 겨울이면 굴에 화이트 와인을 먹을 궁리만 했지 TPO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둔감함에. TPO란 옷을 입을 때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니라 항시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실을 깨달으며 나는 와인을 마시고 있다.

프티 샤블리다. 이전에는 샤블리라고 인정받지 못했던 샤블리와 인접한 밭에서 나는 게 프티 샤블리다. 프랑스의 와인 체계란 복잡하고 제멋대로라서, 보르도와 부르고뉴가 다르고, 론도 다르고, 루아르도 다르지만 이렇게 ‘프티’가 붙는 건 ‘프티 샤블리’밖에 없다고 들었다. 한겨울에 굴 먹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그분으로부터였다. 그분은 B, 나의 와인 선생님이다. 부르고뉴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강의도 하시고, 와인 수입사도 하시고, 레스토랑도 하신다. 나는 B에게 부르고뉴 와인에 대해서 배웠다.

퓔리니 몽라셰, 샤사뉴 몽라셰, 뫼르소, 본 로마네, 뉘 생 조르주 같은 매혹적인 고유명사를 프랑스식 발음으로 소리 내어 따라 하는 것은 고등학교 제2외국어 시간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름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샤사뉴 몽라셰와 포마르와 생토방과 에세조, 제브레 샹베르탱을 마셨다. 샤블리도 마셨다. 샤블리를 테이스팅하면서 B님은 말씀하셨다. 굴과 샤블리는 하나의 공식이지만 요즘에는 프티 샤블리도 괜찮다고. 지구 온난화로 샤블리 지역의 온도가 올랐고, 그래서 이제는 변방이었던 프티 샤블리의 와인이 아주 먹을 만하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산미가 강했는데 따뜻해지면서 프티 샤블리의 밸런스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안도했다.

“이제 와인은 끝났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와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상 기후 현상으로 와인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나는 야속했던 것이다. “이제 문학은 끝났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더. 와인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러지 않겠나? 문학이 잘 나가고 내가 잘 나가서 문학을 하는 게 아니듯 부르고뉴 와인이 끝났다고(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부르고뉴를 마시지 않을 건 아니지만 말이다.

프티 샤블리는 프티하지 않았다. 뭐랄까. 잘 익은 샤르도네면서 솔티하면서 미네럴리티가 충만했다. 샤블리에도 흔치 않은 황금빛인 이 술은 꿀 냄새가 진동하면서 산미와 소금기 때문에 냄새를 맡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프티 샤블리를 한 모금 마신 후 레몬즙을 짠 굴을 호로록 마셨다. 아, 말씀 안 드렸던가요? 나는 프티 샤블리를 굴과 먹고 있었다. ‘굴에는 샤블리’도 물론 좋지만 나는 루아르의 맑은 화이트 와인인 뮈스카데와 굴을 먹는 걸 좋아하는데 쁘띠 샤블리는 처음이었다.

굴은 겨울에만 먹는 거라고 알려져 있지만 삼배체나 스텔라 마리스처럼 사시사철 먹는 굴도 있어서 겨울에만 굴을 먹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관성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한국인인 나로서는 어쩐지 겨울에 먹는 굴이 더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몇 년 전에 석화에 샤블리를 먹다가 ‘밤은 부드러워, 마셔’에서 좀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지만 잠시 인용해보기로 한다. “굴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굴을 먹고 나서 드러나는데, 껍데기에 고여 있는 굴의 즙이다. 바위와 파도와 지구의 즙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까. 그걸 호로록 마시고 샤블리를 한 모금 마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읽고 신안군수님께서 신안에서 키운 굴을 보내주셨었다. 잠시 통화를 했던 굴 연구원님은 한국에서도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유럽형 굴을 생산하기 위해 프랑스에 배우러 갔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몽생미셸이라고 했었나? 꽤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굴을 보내주시는 일에 관여됐던 군수님, 연구원님, 담당자님께 이 기회를 빌어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 ‘한겨울에 굴 먹는 방법’에 대해 마저 이야기해야 한다. 얼마 전에 들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들은 지 반년은 되었다. 하지만 얼마나 복기를 했는지 바로 어제 들은 것 같다. B님이 말씀하신 야외란 어디인가? 부르고뉴다. 12월의 부르고뉴.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진 연말의 부르고뉴. 부르고뉴는 놀랄 정도로 시골이지만 놀랄 정도로 돈이 많은 동네라 크리스마스 마켓의 화려함이(그러니까 조명과 트리 장식) 세상에 없는 화려함이라고 했다. 로망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딱히 없는 나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에 촛불이 켜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릴 때의 부르고뉴에 와인 투어를 가고 싶다는.

부르고뉴의 이야기는 이게 다가 아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부르고뉴에는 포장마차가 빼곡히 펼쳐지는데 집집마다 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바로 이 굴을 샤블리나 쁘띠 샤블리와 먹는 것이다. 물론! 겨울 공기를 함께 들이마시면서 말이다. ‘공기 반, 소리 반’의 느낌을 아는 나는 ‘공기 반, 굴 반’의 느낌으로 굴과 와인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여기는 부르고뉴가 아니고, 야외도 아니다. 나는 내 집의 좁은 식탁에 앉아 굴에 쁘띠 샤블리를 마시며 부르고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떠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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