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어우러진 도형, 숨겨진 의미가 진짜 가치
‘괴짜 그래픽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미국에서 자신의 집을 소유한 사람의 비율을 표현한 ‘마이 하우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12/09/joongangsunday/20231209001514741celf.jpg)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전 세계 인구의 비율: 1990(25%) 1995(21%) 2000(18%) 2005(15%) 2010(12%) 2015(9%)’
-‘문해율(전 세계인 중 읽고 쓸 수 있는 비율: 1820(12%) 1918(28%) 2016(82%)’
-‘업무와 관련 없는 목적으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유럽인 수(단위 백만): 2003(622) 2008(713) 2014(806) 2019(966)’
롤링 스톤즈 등 팝스타 앨범 디자인
![발전소 수명주기 동안 전기 기가와트 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여주는 ‘피이시스 오브 파이’. [사진 서울디자인재단]](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12/09/joongangsunday/20231209001516258yfve.jpg)
“5년 전 로마에서 만난 한 변호사가 ‘현재 브라질·헝가리·폴란드의 상황을 보면 현대 민주주의는 곧 종말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 진짜 그럴까? 의문이 생겨서 각종 데이터를 찾아봤더니 오히려 지금은 현대 민주주의의 황금기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매일 접하는 뉴스의 단편적인 이슈와 정보 만으로 세상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그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보여줬다. 섬뜩하게 날이 선 칼이 수십 개 그려져 있었는데 이 패턴은 그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안감에도 여러 개의 칼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래로 가면서 칼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는 “칼로 인한 폭력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인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조금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작품 주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100여 점의 작품 속에는 흥미로운 정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작품 ‘투 마켓(Two Markets)’에서는 연간 501억 달러 규모의 미술 시장이 얼핏 거대해 보여도 503억 달러에 달하는 전 세계 기저귀 판매량보다 적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김미 스페이스(Gimme Space)’에서는 10만 달러로 두바이에서 살 수 있는 공간의 면적(13.2㎡)과 맨해튼에서 살 수 있는 공간의 면적(6.0㎡)을 비교해 놓았다.
“지금 서울은 홍콩보다 더 매력적”
![2020년 한국의 식량 자급률(달걀 97%, 쌀 90%, 당근 80%, 돼지고기 40%, 기름 13%)을 이용한 ‘그로잉 마이 케이크’. [사진 서울디자인재단]](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12/09/joongangsunday/20231209001517800qfcu.jpg)
사실 그의 작품을 보는 데는 약간의 번거로움이 필요하다. 작품만으로는 무엇을 말하는지 정보를 바로 읽어낼 수 없다. 때문에 작품설명 팜플릿을 소지하고, 작품마다 붙어 있는 번호를 찾아 대조하며 감상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수고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은 작품 자체로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통계 수치를 표현하는 다양한 컬러와 도형, 그리고 배치 수법이 너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직접 디자인한 칼 무늬 코트를 입고 인터뷰 중인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사진 서울디자인재단]](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12/09/joongangsunday/20231209001519924qmoc.jpg)
“우선 중요한 것은 벽에 걸어놓고 싶은 작품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그림 상에 명확하게 숫자가 드러나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매일 바라보고 싶지는 않을 수도 있다. 보기에 좋은 그림,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가 내 작품들의 진짜 가치이자 매력이다.” 참고로 밑바탕이 되는 회화들은 오스트리아·벨기에·프랑스·폴란드·독일의 골동품 경매에서 구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실제로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이번이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이다. 처음 온 때가 1989년 캐세이 퍼시픽 항공사의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서울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산업화에만 집중돼 있어서 공기는 더럽고 길거리도 지저분했다. 당시 나는 홍콩에 살고 있었는데, 그때는 홍콩이 문화적으로 훨씬 더 익사이팅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됐다. 지금의 서울은 홍콩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서울만 봐도 ‘지금이 더 낫다’는 건 맞는 말이다.”(웃음)
전시장 밖 잔디언덕에서도 그의 설치 작품 ‘삶은 그 어떤 경우에도 죽음보다 아름답다(We’d rather be alive than dead)’를 만나볼 수 있다. 지난 120년간 한국의 평균 수명 데이터를 보여주는 ‘에어 댄스(바람을 불어넣으면 움직이는 인형)’ 작품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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