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뒷모습이 아름다운 부부
눈이 내려 몹시 추운 날이었다. 귀가하는 부부의 뒷모습에 홀려 한참을 뒤따라 걸었다. 서로 손을 잡거나 유난스레 다정하게 굴진 않아도 먼 길을 함께 걸어온 부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소박하고 듬직한 뒤태에 마음이 이끌린 탓이다. 눈길에 고무신이 차갑고 미끄러울 텐데도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균형 한번 잃지 않고 담담히 걷는 아내와 새끼줄 멜빵이 어깨를 아프게 짓누를 법도 하련만 봇짐을 등에 지고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편안한 걸음걸이로 아내와 보조를 맞추는 남편. 각자의 짐을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감당하며 한 목적지를 향해 걷는 부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뒷모습은 늘 나의 시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안에 놓여있다. 본인의 시선 밖에 있으므로 꾸미거나 어찌할 수가 없어 무방비인 뒷모습은 그래서 솔직하고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들의 뒷모습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의 표정과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아마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이야기거나 내년 봄에는 밭에 무엇을 심을지, 외양간을 손을 좀 봐야 할지 소소한 집안일을 의논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어떤 부부든 언제까지 이 세상을 함께 걸을 수 있을지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히려 지금 이 순간, 험한 길도 꽃길도 함께 걸어줄 내 편이 내 곁에 있다면 더없이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40년 전에 눈길을 걷던 소박하고 수수한 부부의 뒷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12월, 내 곁을 조용히 둘러봐야 할 때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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