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시선] 신문 오리기
1970년대 한국 미술계는 전후의 멍에를 딛고 근대화를 열망하던 한편, 팝아트나 옵티컬아트 등 서구 미술사조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자기 성찰을 거친 예술에의 추동 의지가 들끓었고,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조형 의식이 발현되었다. 이 같은 배경 속에 개최됐던 그룹전 ‘ST’에서 성능경은 매일 그날 발행된 신문을 벽면에 붙이고 면도칼로 기사를 오려내는 행위를 했다. 그는 이후에도 신문을 가지고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면서 정보를 지우고 해체했다. 정부의 언론 검열 및 탄압을 비판한 미술가의 이런 퍼포먼스는 당시 매우 도발적이었다.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개인의 자유를 드러내는 동작이 긴장 속에서 수행되었다. 유신체제하에 창작을 모색했던 예술가의 신념과 처지가 그랬다.
이제 팔순을 앞둔 원로작가 성능경은 올해만 해도 국내외 유수의 여러 전시에 초대되며 한국의 개념미술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러한 주목은 단색화 시장에 편중됐던 그간 세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자, 미술사의 늦었지만 필요하고 바람직한 행보이기도 하다.
예술이 일상의 영역에서 역할과 자리를 잡고, 스스로의 몸을 매체로 만들어 실천을 지향한 모습은 고유한 울림을 준다. 제도에서 달아나기도, 때로 제도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예술 속에서 우리는 현실을 선명히 바라보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의 언론도 보자. 출근길 문답으로 소통한다고 했던 정부 기조가 특정 언론사 취재 배제, 검찰의 기자 자택 압수수색, 방통위 혼조라는 상황으로 점점 치달은 게 보인다. 요즈음 다수가 시대 역행의 불안과 회의감을 갖는 것은 역사가 일궈온 길에 있던 전위와 저항에 감히 등지고 싶지 않아서일 거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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