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 연준이 직면한 신뢰의 문제
지난 11월 글로벌 금융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주식시장은 이례적인 상승세를 보였고, 한때 5%를 넘어서며 시장의 우려를 낳았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큰 폭으로 주저앉으며 4.3%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달러 역시 원·달러 환율 기준으로 1300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종료됐다고 판단한 시장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투자에 기인한다.
11월 FOMC에서 연준은 5.0%에 육박하는 국채 금리가 실물경제에 긴축 효과를 강화한다는 점을 근거로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추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시그널을 읽어낸 시장 참여자들은 수일 후 둔화돼가는 미국의 고용시장과 소비자물가지수를 만나게 된다. 신중한 연준과 둔화되는 성장, 그리고 약해지는 인플레이션의 조합을 보면서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사실상 끝났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지난 2~3년간 금융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물가와 고금리는 끝난 것일까?
이런 움직임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12월로 돌아가보자. 당시 연준은 급등하는 물가를 보면서 뒤늦게 큰 폭의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이에 주식시장은 약세를 나타냈고, 금리는 큰 폭 상승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서는 등 강달러 기조가 이어졌다. 그러나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실물경제 침체 우려가 강해지자 기준금리 인하와 같은 부양책 재개 가능성이 급부상하게 된다. 이런 기대를 머금고 주식시장이 강한 반등에 나섰고, 국채 금리는 크게 하락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올해 초 1220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경기침체로 인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끝날 것임을,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기준금리 인하로 전환할 것임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결과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실물경제를 짓누르던 고금리가 약해지고 자산가격이 큰 폭 반등하자 미국의 소비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강한 소비에 힘입어 미국의 물가는 재차 고개를 들었다. 고물가가 재현되자 연준은 지난 7월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긴축기조를 재확인하게 된다. 화들짝 놀란 금융시장은 주가 하락과 금리 급등, 그리고 달러 강세 흐름을 나타냈고, 빠르게 상승한 국채 금리로 인해 긴축을 넘어 실물경제의 둔화를 우려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에 과도한 시장 금리의 상승 기조를 제어하고자 완화적인 코멘트를 던진 것이 지난 11월의 FOMC였고, 다시금 시장 참가자들은 사실상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기대를 키우게 된 것이다.
최근과 같이 금리가 크게 하락하고, 자산 가격이 크게 상승한다면 미국의 소비경기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뚜렷한 둔화 기조를 보이던 인플레이션을 다시금 자극할 수 있다. 최근 이런 가능성을 의식한 연준은 다시금 스탠스를 바꾸어 긴축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아직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남아있음을, 그리고 시장이 기대하고 있는 기준금리 인하는 아직 고려 대상이 아님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런 대응은 연준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보다 약한 성장을 이어가는 유럽의 경우 금리 인상은 끝났으며 내년 4월부터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유럽중앙은행 라가르드 총재는 향후 2개 분기 동안 통화 정책의 변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서는 등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중앙은행의 기본적인 책무는 물가의 안정이다. 다만 그런 물가의 안정 속에서도 실물경제 성장을 지원하는 것 역시 고려 대상이 돼야 한다. 여기서 물가 안정과 함께 강한 성장까지 동시에 달성하고자 할 때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처한다. 성장을 보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써야 하고, 물가를 보면 긴축기조를 이어가야 한다. 두 가지 목표를 바라보면서 수개월 단위로 완화와 긴축이라는 상반된 메시지를 번갈아 던진다면 금융시장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긴축을 말하다가 3~4개월 만에 완화로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연준을 보면서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의 긴축 스탠스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연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면, 그들이 쓰는 긴축 정책 역시 힘을 잃게 된다. 최근 필자는 미국 기준금리가 이렇게 높은데 자산 가격이 뜨거운 이유를 묻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연준의 긴축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면 5.5%에 달하는 기준금리도 그 힘을 잃게 된다. 긴축과 완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연준의 스탠스를 보며 인플레이션의 온건한 제압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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