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최초로 헤지펀드 설립한 존스부터 소로스·사이먼스·폴슨 등 ‘월가 큰손’ 조명 종목 선정·투자 전략 등 상세하게 보여줘 금융의 미래는 헤지펀드에 있다고 전망 “일정 규모 되기 전까지 규제 안 돼” 주장 투자위험 외면 지나친 긍정평가 지적도
헤지펀드 열전/세바스찬 말라비/김규진 김지욱 옮김/에프엔미디어/3만원
경영대학원을 나오지도 않았고, 모건스탠리나 골드만삭스 등 거대 투자회사의 헤지펀드 조직에서 성장기를 보내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부정기 화물선에서 사무장으로 일했고, 1년간 국무부의 외교관으로 근무했으며, ‘레닌주의’ 조직이라고 불리는 은밀한 반나치 단체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
미국인 앨프레드 윈즐로 존스. 48세라는 늦은 나이에 친구 네 명에게서 모은 6만달러와 자신의 4만달러를 가지고 1949년 최초로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투자 시스템을 고안한 뒤, 1950년대부터 20년간 무려 5000%의 누적 수익률을 올렸다.
그는 전망이 좋은 주식을 매수하고 전망이 나쁜 주식의 공매도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시장 위험을 ‘헤지’하고 차입금을 가지고 투자를 증폭하는 레버리지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마술과 같은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같은 투자 구조의 결합을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 선물, 옵션 및 이들 간의 어떤 조합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헤지펀드가 금융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헤지펀드는 효율적 시장 가설을 뚫고 헤지를 통해서 시장 위험을 낮추고 큰 레버리지로 투자 효과를 극대화해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절대 수익을 추구한다. 대체로 사모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실적과 전략 등 운용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수수료가 매우 비싸다. 보통의 뮤추얼펀드가 운용 보수 1%가량을 부과하는 반면, 헤지펀드는 운용보수 1~2%에 성과보수 20%를 더해 부과하는 경향이 있다.
존스의 기법을 모방하는 경쟁자가 속출하고 파트너들이 분열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증시 불황과 맞물리면서 존스의 헤지펀드는 큰 손실을 보면서 추락했다. 20년간의 화려한 존스 투자 시대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더욱 개량되고 혁신적인 헤지펀드가 쏟아지면서 헤지펀드 시대가 열렸다.
1992년 9월15일 화요일 저녁, 영국 재무장관은 많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환율의 급변동을 조정하는 ‘유럽 환율조정 제도(ERM)’ 탈퇴를 발표해야 했다. 2주 동안 파운드화 방어를 위해서 무려 27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쏟아부었지만, 실패한 직후였다. 파운드화에서 위험과 손실이 비대칭인 기회를 포착하고 100억달러 상당을 공매도한 소로스펀드는 영국의 ERM 탈퇴로 1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금융 시장 안팎에서 헤지펀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립해 왔다. 한편에서는 비효율적인 가격을 정상화하는 ‘안정화의 영웅’으로 환영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내재한 불안정성 또는 방종한 적극성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취약한 연결고리로 비판받았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모든 국가가 수십년간 경제를 건설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소로스 같은 자들이 거액의 투기 자금을 가지고 와서 망쳐놓았다”고 규탄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출신으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두 차례나 올랐던 저자는 책에서 헤지펀드 대가 10여명과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해 베일에 감춰진 헤지펀드 대가들의 투자 철학과 운용 전략, 흥망성쇠의 역사를 생생하게 다룬다.
열전의 면면은 화려하다. 헤지펀드 시대를 연 앨프레드 존스부터 시작해, 영국중앙은행을 굴복시킨 ‘소로스펀드’의 조지 소로스, 자동 트레이딩 시스템을 개발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사이먼스, 2007년 말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당시 모기지 채권을 공매도해 수수료를 공제하고도 무려 700%의 수익를 낸 존 폴슨 등을 거쳐 지난해 한 해에만 무려 25조원의 이익을 거둔 세계 최대 헤지펀드 ‘시타델’의 케네스 그리핀까지.
주가가 무작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초과 수익을 낼 수 없다고 하는 ‘효율적 시장 가설’은 주류 경제학 등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헤지펀드는 어떻게 증시에서 초과수익을 내온 것일까. 책은 효율적 시장 가설을 뒤집고 시장의 비효율성을 교정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종목 선정과 블록 트레이딩 할인, 매크로 투자, 차익 거래 등 다양한 헤지펀드 전략을 시대 변화와 함께 꼼꼼하게 펼쳐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헤지펀드가 성공한 건 아니다. 헤지펀드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LTCM)’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2명이나 참여했고 다양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췄지만, 설립 4년 만에 붕괴됐다. 지난해 한 해에만 무려 25조원의 이익을 거둔 세계 최대 헤지펀드 ‘시타델’도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당시 유동성 증발로 생존이 위태로웠다.
저자는 금융의 미래는 헤지펀드에 있다고 내다보면서도,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얼마나 커야 규제가 타당할 것인지에 대해선 답변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일정한 규모가 되기 전까지는 규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정부나 규제 당국은 헤지펀드의 위험 감수를 억제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성장시켜 대마불사 금융기관에서 고위험 자산운용을 이전받아 더 많은 위험을 흡수하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누가 더 위험을 잘 관리할 것인가를 묻는다. 납세자를 위태롭게 하는 거대 은행에 위험을 집중하는 미래인가, 아니면 정부의 생명줄에 기대하지 않는 소형 헤지펀드들에 위험을 분산하는 미래인가, 라고.
책은 헤지펀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짙은 한국 사회에서 헤지펀드와 대가들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헤지펀드의 여러 우려나 불안감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평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