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반려견, 맛있는 ‘고기’…동물 범주 속 폭력과 모순들

김수미 2023. 12. 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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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이름 아래 도살 행위 은폐 등
자의적 ‘정상동물 이데올로기’로
반려·실험·식용·전시 동물 나눠
法에서는 고통 인지 여부로 보호
지능 높아도 척추 없는 문어 제외
동물 법인격 인정 위해 곳곳 분투

정상동물/김도희/은행나무/1만8000원

“동물은 ‘고기’로 태어나지 않았다.”

반려동물 1500만 시대에도 해마다 도축되는 동물의 수는 800억이 넘는다. 어떤 동물은 ‘가족’이 되고 어떤 동물은 ‘고기’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언젠가부터 개와 고양이는 반려동물, 토끼와 쥐는 실험동물, 소, 돼지, 닭은 식용동물, 돌고래, 원숭이는 전시체험동물 등으로 범주화됐다.

동물권 변호사인 김도희는 신간 ‘정상동물’에서 이렇게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나누는 것을 ‘정상동물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한다. 이런 논리로 식용동물은 ‘죽여도 되는 존재’가 되고, ‘고기’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김도희/은행나무/1만8000원
페미니스트 비건 채식주의자 캐럴 애덤스는 ‘고기’라는 텍스트가 그 동물에 대한 제도화된 억압과 폭력을 가리는 훌륭한 언어적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고기는 우리가 동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 또는 망각하게 하고 ‘동물을 먹는다’는 도덕적 비난을 교묘히 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 인간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 돼지, 닭을 대신 죽여줄 사람을 만들어 그 부담을 전가하는데, 이런 청부 도살은 주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떠맡는다.
동물보호법에서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보호할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을 나눈다. 고통은 신경계가 자극되거나 손상됨으로써 발생하는 방어기제 같은 것으로, 고통을 느낀다고 인정된 동물은 척추동물인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다. 그 외 동물은 보호받는 못한다는 뜻이다.
지난 10월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일대에서 열린 ‘서울 반려동물 한마당 축제’에 참가한 반려견들. 연합뉴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선생님’에서 문어는 조개껍데기를 엮어 은신처를 만들고 자신을 찾아오는 인간을 기억하며, 자신이 낳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식음을 전폐한 채 보호하다가 죽어가는 눈물 나는 모성애를 보였다. 뛰어난 지능과 교감 능력에도 불구하고 두족류인 문어는 척추가 없으므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여겨져 동물보호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하지만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동물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뉴질랜드 북서쪽에 있는 환가누이강이 대표적이다. 환가누이강 상류 수력발전소 가동으로 땅이 침식되고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몰리자 뉴질랜드 의회는 2017년 환가누이분쟁해결법을 제정해 ‘환가누이강은 법적 인간(legal person)의 모든 권리, 권한, 의무, 그리고 부채를 갖는다’고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1년 9월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선언한 민법 개정안이 정부입법안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지난 8월25일 강원 춘천시 불법 도축 현장에서 발견된 개들의 모습. 연합뉴스
법 개정이 쉽지 않자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판례를 만들기 위해 동물에게 법인격을 인정해달라는 이른바 ‘자연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 동물의 서식지 보호에 관련된 소송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03년 ‘도롱뇽과 친구들’을 원고로 한 천성산 지역 터널 공사에 대한 공사착공금지가처분 소송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이후에도 서식지 보존을 위해 동물에게 법인격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줄줄이 각하됐다.

최근 제주에서는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해 법인격을 부여하고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 의회는 제주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인 대정읍 앞바다에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개발하기 위한 시범지구 지정 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제주남방큰돌고래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도 해녀, 어민, 해양스포츠 관련 종사자들과 함께 해양생태계 대표로서 청구인에 포함됐다.

동물권 보호를 위해 법을 만들고, 소송을 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덜 쓰고 덜 먹고 덜 착취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 느려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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