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사쿠라들’을 떠올리며[책과 책 사이]
이번주 출간된 <지지 않는 달>(하타노 도모미 지음·문학동네)은 스토킹 범죄 여성 피해자의 공포와 남성 가해자의 심리를 낱낱이 그린 일본 소설이다.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범죄자로 돌변한 전 남자친구 마쓰바라는 ‘지지 않는 달’처럼 늘 사쿠라 주변을 맴돌고 있다. 사람들은 사쿠라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매일 두려움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로지 그녀였다. 마쓰바라는 사쿠라에게 하루 수백건의 메시지를 보내고 몰래 미행하거나 감시하고 직장동료와 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녀는 도무지 그로부터 헤어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다. “스토커는 순간의 틈을 노리고 찾아와요. 경찰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그녀는 도망치듯 집을 옮긴다. 이제 막 이사를 했다. 불과 3분 거리 편의점으로 걸어가는 건 괜찮겠지 했다. 순간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창밖으로 마쓰바라가 보인다. 소설은 “달이 빛나고 벚꽃 잎이 흩날린다”며 처연하게 피해자의 서사를 마무리한다. 결국 둘 중 누구 하나 비극을 향해 달려가야 끝이 날 듯한 악몽 같은 이야기다.
소설은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은 더 처참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스토킹 범죄 사건이 들려온다. 유명인과 일반인 경계도 없다. 최근 나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전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남자친구보다 먼저 졸업을 한다는 이유로 22세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이 알려졌다. 1만명이 넘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소설 <지지 않는 달> 속 사쿠라는 계속 체념한다. 뉴스를 보면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 한 문장에 밑줄을 그어본다. “본인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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