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는 건 자기만족적인 환상[책과 삶]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마리아 투마킨 지음 | 서제인 옮김
을유문화사 | 432쪽 | 1만8000원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출간 이듬해인 2019년 전미비평가협회는 이 책을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로 선정하면서 이렇게 소개했다. “당신이 누구이든, 이전에 무엇을 읽었든 간에, 나는 당신이 이 책과 같은 것을 읽어보지 않았음을 보장할 수 있다.”
영어 화자의 흔한 과장법처럼 보이는 이 문구는 사실 아주 정확한 설명이다.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은 아무런 예고도, 설명도 없이 자살로 동생 ‘케이티’를 잃는 여성 ‘프랜시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프랜시스에서 케이티로, 케이티의 전 남자친구로, 또 다른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브린’으로, 그의 절친한 친구 ‘S’로 옮겨간다. 이 이동은 불규칙하고 무질서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 책이 독자에게 안기는 것은 혼란만이 아니다. 비극적인 사건·사고를 겪은 뒤 찾아오는 끝없는 고통과 슬픔 속으로 독자를 밀어넣는다. 그리고 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독자의 선한 교만을 뒤흔든다. 저자인 호주의 작가 마리아 투마킨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자기 만족적 환상이라고 본다.
놀라운 것은 이런 주장을 ‘이론화’하지 않고도 설득해낸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그들의 이야기를 핑퐁처럼 오가다 ‘길을 잃었다’ 생각할 때쯤 독자는 여러 파편이 머릿속에서 조립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투마킨은 구소련 하리키우(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10대 때 가족과 호주로 이주한 이민자다. 소수자로서 키워온 예민한 감각은 이 탁월한 책의 밑바탕이 된 듯하다.
을유문화사 암실문고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서로 다른 색깔의 어둠을 하나씩 담아 서가에 꽂아두는 작업’을 표방하는 이 시리즈에 더없이 어울린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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