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뜨개질하는 여인들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일종의 힘으로
에이미 헴플, ‘시작하기, 한 코를 건너서 두 코를 함께 뜰 것, 코를 늘릴 것, 계속할 것, 반복할 것’(‘사는 이유’에 수록, 권승혁 옮김, 이불)
에이미 헴플의 단편 ‘시작하기, 한 코를 건너서 두 코를 함께 뜰 것, 코를 늘릴 것, 계속할 것, 반복할 것’은 아마도 소설 첫 장에 나오는 이 문장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의 아이가 가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자신의 빈손을 결코 오므리지 않으려는 여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아이를 잃은 적이 있는데 앤의 집으로 이사해 그녀를 돕고 살림하는 일을 한다. 시간이 나면 주인 이름이 잉그리드인 털실 가게에 가서 둥근 떡갈나무 탁자에 모여 “혼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을” 함께 뜨고 있는 여성들을 지켜보거나 모헤어, 앙고라 같은 털실을, 120나 되는 절벽에 올라가 양털을 깎는 사람 덕분에 만들어진 귀한 양모를 사기도 한다. 나는 식당에 있을 때도 장식품인 성모마리아상에 금실과 은실을 엮어 장식하는 상상을 하고 우편함과 자동차, 심지어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동네 사람들도 다 떠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세상의 모든 게 다 실이고, 세상 모든 게 다 재료라고” 여기며. 그러곤 완성품들을 차곡차곡 서랍에 넣어둔다.
앤이 출산을 했다. 나는 앤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육아실에 먼저 들러 아기를 보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날 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꿈을 꾸었다. 앤의 남편 다이아몬드 박사는 나에게 새로 시작할 준비를 위한 몇 가지 조언을 들려준다. 새로 시작할 준비. 나는 그 말에 안데스산맥에서 만들어지는 알파카 털실을 떠올렸다. 알파카 털실은 만질 때의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만이 경이로운 게 아니라 알파퀴타 수퍼피나라는 이름 또한 놀랍다는 사실을. 나는 나에게 말한다. 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그러니 시작하기, 한 코를 건너서 두 코를 함께 뜨기, 코를 늘릴 것, 계속할 것, 반복할 것.
앤은 내가 준 뜨개질 가방을 열어본다. 노란 오리들이 일렬로 늘어선 스웨터, 생명의 나무와 하트 모양 패턴 등의 다섯 개나 되는 아기 스웨터. 그 스웨터들은 나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스웨터를 많이 짠 건 일종의 예방 조치, 재난을 피하기 위한 예행연습” 같은 것이었다는. 그녀도 뜨개질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나는 잉그리드의 가게로 앤을 데려간다. 잉그리드는 앤에게 털실을 보여주며 말한다. “순모를 사용할 것, 성인 취향의 색깔을 사용할 것, 당신의 작품을 절대 자랑하지 말 것, 그랬다가는 이웃들에게 줄 것만 계속 뜨게 될 거라고.”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패턴 책을 본다. 그 책은 자장가같이 들린다. “나머지 코를 모아 겉뜨기. 느슨하게 마무리하기.”
어떤 여성들은 지금도 뜨개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뭔가를 잃은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서, 이웃들에게 주고 싶어서.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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