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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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이 뭐야?" 종종 듣는 질문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어떤 곡일까? 우선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협주곡으로 꼽히며, 라흐마니노프가 미국 데뷔를 앞두고 작곡한 야심 찬 작품이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가장 대중적인 피아노 협주곡으로 알려져 있다면, 이후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피아노 협주곡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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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음 사이 긴 여백 채우기 위해
오랜 시간 가꾸어진 감수성 필요
老거장들의 고고한 연주 더욱 귀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이 뭐야?” 종종 듣는 질문이다. 우선 ‘어렵다’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연주하기에 기술적으로 굉장히 까다롭고 템포가 빠른 음악을 어려운 음악이라고 한다면,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있다. 밀리 발라키레프(1837∼1910)의 ‘이슬라메이’가 있고, 모리스 라벨(1875∼1937)이 작곡한 ‘밤의 가스파르’가 있다.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을 보면 고난도 묘기에 가까워 보일 지경이다. 그만큼 피아니스트들에게도 매 순간 긴장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건, 스콧 힉스의 영화 ‘샤인’ 덕분이다. ‘샤인’의 주인공 데이비드 헬프갓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끝마치고,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며 연주활동을 중단한다. 그만큼 악명 높은 피아노 협주곡이다. 실제로 작품을 헌정 받은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은 ‘나를 위한 곡이 아니다’라며 작품을 거절했다. 그는 이 작품을 연주할 만큼 큰 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콩쿠르에 도전하는 피아니스트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당연한 선택이다. 작년에 열린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고른 작품도 바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그는 결선에서 완벽 이상의 연주를 들려주며, 모두가 납득할 만한 우승을 차지했다. 쏟아지는 음표들을 놓치지 않고 연주하는 것을 넘어, 음악이 가진 드라마도 강렬하게 부각했다. 결국 이 음악은 피아니스트가 가진 뛰어난 능력을 40분 안에 요약해 줄 수 있는 음악인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연주하기 어려운 곡들은 따로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없이 느린 템포를 가진 음악들이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빠른 음악이 아니라 느린 음악이 연주하기 더 어렵다고?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인데, 왜 연주하기 어려운 걸까?
말 그대로 느린 음악이라 그렇다. 빠른 음악에 비해 느린 음악은 음과 음 사이를 잇는 노력이 배가 된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늘어나서 그사이의 여백도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피아니스트는 이 여백을 채우기 위해 아주 섬세한 접근을 시도한다. 음과 음을 잇는다는 건 단순히 음을 연이어 연주하는 차원이 아니라,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부여해야 하는 일이다. 음과 음 사이의 균형을 조정하고, 색깔을 맞춰 주는 고도의 작업이 필요하다. 물리적인 힘이나, 근육이 아니라, 오랜 시간 가꾸어진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서로 다른 두 음에 인연을 부여하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 작업이다.
노 거장들의 연주가 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이로 인한 신체노화 때문에 젊은 연주자들보다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순 없지만, 그보다 귀한 연주를 보여준다. 짱짱하고 화려한 연주는 아닐지언정, 고고한 조선백자 같은 연주를 보여주는 것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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