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는 것에는 축복이 없다[안주연의 래빗홀]
마인드풀 러닝
김성우 지음
노아시드|236쪽|1만5000원
“너무 빨리 뛰려고 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해요.”
세계 최고의 달리기가 어떤 모습인지 직접 보고 곁에서 뛰어보고 싶어 장거리 달리기의 성지인 케냐 이텐 마을로 떠난 김성우 작가. 그들이 느끼는 달리기의 깊이를 경험하고, 빠름의 비결을 훔쳐오고 싶었던 그가 케냐의 달리기 선수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몸이 훈련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해요.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장’에는 그에 합당한 시간이 필요해요.”
“목표에만 집중하면 서두르게 되고, 무리하게 되어 다치거나 부담을 느낄 수 있어요. 서두르지 않아야 오히려 빠를 수 있어요.”
올 한 해, 우울증과 번아웃증후군의 회복을 돕는 것을 목표로 진료와 강연을 해온 저에게는 ‘서두르는 것에는 축복이 없다’는 케냐 선수들의 태도가 더욱 특별하게 와닿았습니다. 무기력과 피로, 회복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생명체란 무엇일까, 건강한 삶이란 무엇일까 자문하게 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 제 머릿속에는 응급실이나 병실에서 집중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게 연결하는 바이털 사인 모니터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측정된 혈압, 심박수, 호흡수, 체온의 변화가 까만 화면에 각각의 파형으로 반복적으로 그려져나가는 모습이요. 저는 생명체란 외부환경에 적응하며 내부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존재이자, 그 활동에 자기만의 고유한 리듬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이완기와 수축기를 오가는 혈압, 들숨과 날숨으로 이루어진 호흡…. 우리 몸의 에너지와 물질 대사는 어떤 범위 안에서 주기를 갖고 오르내리는 리듬으로 흘러갑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만의 주기와 그때그때의 컨디션을 살피고, 느끼고, 받아들여 활동에 반영할 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힘든 일을 끝낸 후에 충분히 쉬지 못하고 다시 일해야 한다면? 어떤 과업을 잘 마친 이후에 다음 일은 조금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아니 더 잘해내야만 한다면? 늘 최대 효율을 달성하도록 요구받는 인간은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을 지켜낼 수 없고, 결국 생동감과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번아웃이라고 부릅니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 몸과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수용하자고 생각하면 새로운 걱정이 생깁니다. 나는 하루 종일 쉬고만 싶고 노는 게 제일 좋은데, 마음의 소리를 어느 정도 따라야 하는 걸까? 다행히 소설가이자 마라토너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한 고민을 해왔던 모양입니다.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적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집중하면 좋은가?”
좋은 질문이지만, 결국은 시도하고 경험해보아야 그 경계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인드풀 러닝>의 저자는 케냐의 서두르지 않는 달리기를 경험하고 돌아오지만, 이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조급함과 욕심, 그리고 주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훈련하고 빨리 달리려고 애쓰다가 한동안 달리지 못할 정도의 번아웃에 빠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100㎞ 울트라마라톤에 참여한 이후 자신에게서 달리기에 대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러너스 블루’ 상태를 경험합니다.
바쁘고 경쟁이 가득한 사회, 이렇게 정말 열심히 살다가 지쳐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께, 가능한 만큼 짬짬이라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돌보고 쉬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쉬고 숨을 고르다보면, 무리한 경험들로부터도 천천히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고, 이제 새로운 균형과 한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요. (그렇다고 계속 심한 무리와 휴식을 반복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면 ‘나의 속도로 달리며 내가 즐겁고 행복한, 나를 위한 달리기’(마인드풀 러닝)를 만들어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이야기합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277쪽|1만4500원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완주할 수 있는가, 어느 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올 한 해 삶의 리듬을 이어온 여러분, 정말 애쓰셨습니다. 리듬을 이어가는 한,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숨결과 박동들이 합주로 연결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올해의 래빗홀을 마칩니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