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법사위 병목’ 현상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4일 김도읍 법사위원장(국민의힘)에게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청문회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고 선전포고했다. 대법원장 공백 장기화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김도읍 위원장을 인사청문위원장직에서 끌어내리겠다며 여당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다음날 청문회에서 인사말을 끝내자마자 물러났고 주호영 의원이 대신 청문위원장을 맡았다.
제1당 원내대표와 법사위원장 간의 ‘힘겨루기’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상정에서 촉발됐다. 야당이 지난달 30일 열릴 예정이던 국회 본회의에 이동관 탄핵소추안을 상정할까봐 김 위원장은 전날 법사위를 20분 만에 산회했고, 결국 본회의가 무산됐다. 일주일 전 법사위도 같은 이유로 20분 만에 산회했다. ‘서울 초등교사 자살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비롯해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안, 취업 후 학자금상환 특별법 등 민생 관련 법안은 법사위에서 보름 넘게 묶였다.
지난 7일 열린 법사위는 그간 밀려 있던 185건의 법안을 밀린 숙제 하듯 벼락치기로 심사해 대부분 가결했다. 다음날 본회의에서는 140여건의 법안이 무더기로 통과됐다.
지난 10~11월 두 달간 법사위가 처리한 법안은 단 1건도 없었다. 그렇게 법사위에 쌓인 대기 중 법안은 지난 4일 현재 2000건이 넘었다. 이 기간 중 여타 상임위원회에서 넘어온 법안도 500건에 달했다. 법사위에 넘어온 법안들이 명절날 고속도로처럼 꽉 막혀 움직이지 못한다. 국민들이 보기에 이런 한심한 광경이 없다.
법사위는 상임위의 ‘상원’이나 다름없다. 국회법에 따라 모든 법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야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국회 원구성 시 매번 법사위원장직을 놓고 여야가 다투는 이유도 법사위가 가진 무소불위의 힘에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7월 법사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넘겨주면서 내건 조건은 체계·자구 심사 권한의 폐지 검토였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법사위 병목’ 현상을 없앨 근본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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