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후변화대응지수 67개국 중 64위, 산유국 빼면 최하위
한국의 국가적 기후 대응 수준이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국제연구단체의 평가 결과가 나왔다. 평가 대상 중에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뿐이었다.
기후솔루션은 국제 평가기관들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90%를 차지하는 63개국과 유럽연합을 대상으로 평가,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CCPI)에서 한국이 전체 67개국 중 64위에 머물렀다고 8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4단계 하락한 순위다. 지난해에는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비워둔 1∼3위를 포함해 전체 63위 중 60위로 평가됐다.
기후변화대응지수는 저먼워치와 기후 연구단체인 뉴클라이밋 연구소, 환경단체 클라이밋액션네트워크(CAN) 인터내셔널 등이 각국의 기후 관련 정책과 이행 수준을 평가해 발표하는 지수다.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에너지 소비, 기후 정책 등 4가지 부문으로 나눠 평가하고, 점수를 합산해 국가별 종합점수를 낸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사용 부문이 ‘매우 저조함’으로, 재생 에너지와 기후 정책 부문은 ‘저조함’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이 저평가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첫번째는 제10차 전기수급기본계획에서 하향 발표된 재생에너지 목표다. 올해 초 윤석열 정부는 10차 전기본에서 2030년까지 기존 30.2%였던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21.6%로 낮춘 바 있다. 또 10차 전기본에는 노후화된 석탄화력발전소 대부분을 역시 온실가스 배출원인 가스발전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 담겼는데, 이것 역시 저조한 평가를 받는 이유가 됐다.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한국이 파리협정에서 이번 세기말까지 전 지구 지표면 평균 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로 한 국제사회의 목표에 맞도록 석탄발전과 가스발전 비중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이 기후 대응에서 최하위권으로 평가된 두 번째 이유는 석유와 가스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지속하는 공적 금융이다.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 자금 지출을 아직 종료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한국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해외 석유와 가스 사업에 71억40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으며 이는 일본에 이어 세계 2번째 규모다.
한국이 낮은 평가를 받은 세 번째 원인은 국내 바이오매스 사용률 증가다. 한국의 바이오매스 발전량은 산업자원통상부와 산림청의 바이오매스 지원 정책에 따라 지난 10년간 42배 증가했다. 바이오매스 발전은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와 산림 파괴 및 생물다양성 손실 등으로 인해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이행 수단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바이오매스가 태양광이나 육상풍력보다 높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받고 있어, 재생에너지 확대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들로 인해 한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매년 국제 평가기관, 시민단체들로부터 혹평을 받으면서 ‘기후 악당’으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세계 기후환경단체들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과 노르웨이, 캐나다 앨버타주를 ‘오늘의 화석상’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기후행동네트워크는 1999년부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릴 때마다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나라들을 선정해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수상자로 한국이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후솔루션 김주진 대표는 “정부와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돕고, 공적 자금의 화석연료 투자를 끝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공적 금융의 역할을 살려야 한다”며 “이는 곧 국제적 기후 리더십을 보여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후변화대응지수 평가에서 1∼3위는 지난해에 이어 평가 기준을 충족하는 국가가 없었던 탓에 빈자리로 남았다. 4위인 덴마크가 지난해에 이어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고 에스토니아와 필리핀, 인도, 네덜란드가 뒤를 이었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개최 중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은 한국에 이어 65위를 기록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크게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석탄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상당량의 가스발전까지 계획하고 있는 탓에 51위로 평가됐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미국은 재생에너지는 크게 늘어났지만, 모든 부문에서 기후 친화적 정책을 구체적으로 갖추지 못한 탓에 지난해보다 5단계 하락한 57위를 기록했다. 석유와 가스 관련 최대 투자국인 일본은 8단계 내려앉은 58위를 기록했으며, 최근 기후정책이 후퇴했다고 평가받는 영국은 지난해 11위에서 9단계 아래인 20위로 추락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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