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보여도...역동적 그림 앞 즉흥공연 “예술은 교감”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12. 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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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에밀리오 베도바 전시장서
시각장애 가수 겸 배우 이동우
배우 소유진·피아니스트 송광식
현대음악·마임 등 결합한 표현극
이 “시력 잃어도 예술본질 느껴”
서울 용산 타데우스 로팍의 신표현주의 작가 에밀리오 베도바의 개인전과 연계해 즉흥연주회를 기획·공연한 피아니스트 송광식과 배우 소유진, 배우 겸 가수 이동우(왼쪽부터). 이승환 기자
가수 겸 배우 이동우(53)는 전맹이 된 눈을 가리던 선글라스도, 보조기구인 흰 지팡이도 없이 그림들 곁에 섰다. 이탈리아 출신 추상화가 에밀리오 베도바의 개인전 ‘색, 그리고 제스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 타데우스 로팍의 전시장에서의 지난 7일 밤 특별 공연을 위해서다. 그는 쿵쿵 울리는 비트와 음악에 맞춰 마임을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손으로 물감을 찍어 검은 옷을 입은 자기 얼굴과 몸에 바르기도 했다. 마치 베도바가 수십 년 전 옆에 걸린 그림들을 그릴 때 그렇게 했을 것처럼, 감각에 기댄 즉흥적 몸짓이었다. 함께 음악 작업을 해온 피아니스트 송광식(57)이 작곡과 현장 연주를 맡았고, 절친인 배우 소유진(42)이 작품 설명 나레이션을 곁들였다.

20분간 이어진 실험적인 이 공연은 베도바에 대한 오마주. 작가 스스로 “이미지가 아닌 제스처가 당신을 공격하고 덮친다”고 말했을 정도로 베도바의 그림은 차분함이나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다. 표현 그 자체를 중시해 캔버스에 뛰어들듯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그 결과물은 물감 위로 지나간 손가락, 흩뿌려진 모래, 흘러내린 물감의 흔적 등 충동적인 힘을 내뿜는다.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 후대 신표현주의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가이기도 하다. 1월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엔 1980년대 초부터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한 총 16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국내에 베도바를 알리기 위한 전향적 시도다. 평소 미술애호가인 소유진이 절친인 이동우를 주축으로 한 기획 공연을 갤러리 측에 제안한 것이 베도바 재단 등의 동의 하에 성사됐다. 그 결과 눈이 보이지 않는 이동우가 작품 앞에서 느낀 바를 이색 공연 형식으로 펼치게 된 것이다.

에밀리오 베도바, ‘...Da Dove...1983-13’. 사진제공=타데우스 로팍
에밀리오 베도바, ‘Ciclo 2006’. 사진제공=타데우스 ㅗ팍
정말로 보인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캔버스 위에 마구잡이로 붓과 몸을 문대고 휘저은 것 같은 베도바의 추상화는 보고 나서도 무엇을 본지 모르겠다는 감상을 느끼게 하기 쉽상이니 말이다. 이에 대해 이동우는 “베도바가 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 모두 검정색”이라며 “그 검정 안에는 뚜렷한 구조와 색, 빛이 존재한다. 아주 경쾌하고도 묵직하고, 활발하고도 정직했다”고 표현했다.

귀와 마음으로 작품을 본 이동우는 베도바를 ‘역동’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공연 전 리허설 중에 만난 이동우는 “예전부터 갤러리에서 이런 무정형의 공연을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다”며 “본 적도 없고 전혀 몰랐던 작가지만 자료를 찾아보면서 핵심어를 찾고, 그것을 다시 보편성을 가진 음악과 행위로 표현해봤다”고 했다. 1993년 S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동료 홍록기·김경식·표인봉·이웅호와 5인조 그룹 ‘틴틴파이브’를 결성해 댄스곡 앨범을 내는 등 인기리에 활약했다. 그러던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고, 2010년께 실명했다. 이후 라디오 진행, 재즈 보컬, 강연 등의 활동을 해왔다.

소유진과 이어온 특별한 우정도 이번 공연이 성사된 중요한 배경이다. 두 사람은 계원예고 동문으로 함께 라디오를 진행하는 등 연예계 데뷔 후에도 친분을 쌓아왔다. 특히 이동우가 시력을 잃은 후에는 소유진이 직접 책을 녹음해 선물하거나 갤러리·아트페어 등에 해설자로서 특별한 예술 감상에 동행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본다?
소유진 “이동우와의 예술 감상
다른 눈으로 작품 보게 해줘 감사”
7일 서울 용산 타데우스 로팍에서 연 에밀리오 베도바 개인전 연계 공연에서 즉흥 마임 등 표현극을 이끈 이동우. 이승환 기자
역설적으로 이동우는 보지 못하게 된 후로 더 많은 것을 본다. 갤러리에 걸린 그림도, 동료가 하는 연극·뮤지컬 무대도 그는 여전히 볼 수 있다. 비장애인이 설명해주는 정보, 주변의 소리와 냄새 등 모든 감각이 연결고리다. 그는 “눈을 뜨고 보는 사람은 일차원의 보이는 것만 본다”며 “저는 소리를 들으면서 보기 때문에 훨씬 더 입체적이고 고차원적으로 본질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마 비장애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유진이 같은 친구가 책을 읽어주거나 미술 작품에 관해 얘기해주는 건 서로의 감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해요. 그래서 친구를 통해 제가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는 어쩌면 온전한 예술 작품보다 더 근사해요. 눈을 감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에요.”

눈이 보이지 않는 이와 미술을 보는 건 소유진에게도 특별한 일이다. 오히려 제대로 볼 수 있는 경험이 돼준다. 소유진은 “어떨 땐 정말 봐야만 알 것 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동우오빠에게 들려주려면 내 다른 감각을 끌어들여서라도 설명하게 된다”고 했다. “오빠의 질문이 제가 보는 지점과 다를 때도 있고, 철학적일 때도 있죠. 그러면 저 역시 다른 눈으로 작품을 볼 수 있게 돼요. 정말 좋은 친구이자 동행자예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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