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태어난 도시가 당신 운명을 결정한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2. 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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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7%였던 도시 거주율
현재는 80억명 중 45억명
도시 내부 富의 불평등부터
몰락까지 세계사적 고찰
"체계적 교통망에 잠재력 쑥"
'메가 서울' 논쟁에 시사점
인구 초과밀 도시인 홍콩의 한 아파트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기원전 5세기, 그리스 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이렇게 썼다. '행복의 첫 번째 요건은 유명한 도시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태어날 장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면 과연 어디를 택했을까. 서울과 뉴욕, 런던과 파리 중 당신의 선택은 어디인가. 소말리아 모가디슈, 짐바브웨 하라레는 어떤가. 열악한 소도시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뉴욕이나 파리에서 태어났더라도 부자가 아닌 이상 행복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건, 도시가 '한 사람이 감내해야 할 생'의 강력한 조건이란 사실이다.

그렇다. 인간은 첫울음을 터뜨릴 때 운명의 팔할 이상이 예정됐던 것인지 모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김포·구리·고양 등 수도권 도시의 서울시 편입 논쟁, 즉 '메가시티' 논쟁이 지나간 가운데 도시의 번영과 몰락을 세계사적으로 사유한 책이 출간됐다. 이언 골딘 옥스퍼드대 교수의 2023년 신간이다. '모든 도시는 사실상 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 다른 하나는 부유한 사람들의 도시다'(플라톤)란 명제에서 출발해 '현대 도시의 길'을 돌아보는 책이다.

도시의 역사는 3500년 전으로 돌아간다. 수천 년 동안 초기 도시 거주민은 소수였고, 로마제국에 이르러서도 도시민은 인구의 15%를 넘지 않았다.

도시민은 농촌에서 식량을 공급받아야 했다. 도시가 농촌 식량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농촌엔 '잉여 식량'이란 게 없어 늘 굶주렸다. 그 결과 농사 외에 다른 일을 해볼 가능성도 작았다. 하지만 도시의 발달은 도시와 농촌으로 구획된 공간의 이분법에 변화를 가져왔다. 도시엔 새 삶에 대한 기회가 넘쳤고, 사람들은 돈의 욕망을 좇아 이주했다.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 이언 골딘·톰 리 데블린 지음, 김영선 옮김 어크로스 펴냄, 1만8800원

1800년대 세계 인구 10억명 가운데 도시 거주민은 7000만명이었다. 이제 세계 인구는 80억명이며 45억명이 도시에 산다. 2050년엔 인구의 70%가 도시에서 살아가리라 전망된다. 도시는 인류 진보의 엔진이었다. 결국 향후 도시의 경쟁력은 인류의 번영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다.

우리에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은 것처럼, 20세기 중엽 중산층 일자리는 가난을 벗어날 사다리였다. 가장 한 명이 벌어도 네 식구가 먹고살 만하던 그때,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로 이주하려는 노동자의 꿈도 어렵지만 실현 가능했다. 전부는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그 꿈을 성취했다. 도시는 이주자에게 '꽤 괜찮은' 임금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젠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안다.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과거엔 중산층에 해당했을 일자리 임금으로도 거주비를 감당하지 못한 노동자는 외곽으로, 또 외곽으로 밀려난다.

저자의 나라 영국의 수도 런던도 '도시 불평등'을 보여준 세계사적 사례다. 영국 평균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1990년대 중반 3배에서 2020년대 7배로 치솟았다. 런던은 이 비율이 3.5배에서 11배로 커졌다. 반면 같은 기간 영국 북부는 3배에서 4배로 뛰는 데 그쳤다. 수요가 많은 곳에선 주택을 구입하기 어려워지고, 더 큰 기회를 찾아 이주하려는 저숙련 노동자들은 이주에 제약을 받는다.

어떻게든 도시에 전입해 살아가더라도 도시 '내'에서도 부의 기회는 불공평한 것이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는 도시 내에서도 불평등이 독보적이다. 저임금 노동자 임금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고소득자 임금은 고공 행진해 격차를 벌린다. 도시는 해악으로 가득 찬, 불평등의 엔진일 뿐일까. 저자 이언 골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도시가 가진 힘을 믿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런던 서부 커네리워프는 도시 진입의 불평등이란 문제를 전환하려고 시도 중인 진귀한 사례다. 서울로 치면 여의도에 해당하는 커네리워프는 금융기관 밀집지역으로, 오후 7시만 지나면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책에 따르면 커네리워프는 지역 내 거대 규모의 연구소를 신설하는 한편 복합용도지역으로 전환하려고 아파트 수천 채를 건립 중이라고 한다. 저녁이면 유령도시가 되는 상권에 직주근접 요건을 채워 도시 잠재력을 깨우려는 목적에서다.

도시 잠재력을 키우는 또 하나의 힘은 체계화된 대중교통이라고 책은 말한다. '지옥철의 수도'인 서울이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공정한 대중교통은 경쟁력 높은 도시를 위한 하나의 기둥이다. 또 버려진 쇼핑몰이나 쇠퇴한 중심가에 매장을 내면 세금 감면으로 이를 장려하고, 이 구역 근처에 주택을 짓고 중층 개발을 하면 고객을 끌어들이게 된다. 이때 교외와 준교외 지역까지 대중교통 체계를 갖춘 뒤 수익 기반을 승차권 판매액에서 일부 세금으로 전환해 연결망을 구축하자고 저자는 제언한다.

"도시가 뚜렷한 기능을 가진 일련의 동심원이라는 도시 개념을 신념처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가난은 도심에서 멀리 원심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도심 접근성을 높여야 도시 전체의 경쟁력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은 서울 메가시티의 당부(當否)를 사유할 진언으로 읽힌다. 도시 중심부에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지어 주택 구입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도시가 '부자들이 독점하는 운동장'이 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저자 주장이 서울에도 적용 가능할지는 다소 고민이 필요하겠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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