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끈적한 침전물 석유, 어떻게 '검은 황금'이 됐나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2. 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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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세계사에서는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한 1914년 사라예보 사건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바로 석유 때문이었다.

당시 선박들은 대부분 석탄 엔진을 쓰고 있었는데 석유는 액체기 때문에 석탄보다 공간을 훨씬 덜 차지했다.

엥달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중동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것도 석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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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엥달 (1944~)
석유의 근대사 연구한 美정치사회 칼럼니스트

보통 세계사에서는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한 1914년 사라예보 사건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하지만 숨겨진 원인도 있었다. 황태자가 암살되기 6개월 전 영국은 이미 독일에 물리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석유 때문이었다.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던 독일이 석유 확보를 위해 베를린에서 바그다드에 이르는 석유 수송라인을 건설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사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석유는 그리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고대에는 화장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한 물질이지만 정제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그저 별 쓸모없는 검고 끈적끈적한 침전물에 불과했다.

미국 정치사회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엥달은 석유의 근대사를 꿰고 있는 저자다. 석유가 일약 검은 황금이 되기 시작한 건 19세기 후반 미국이 석유 보일러를 개발해 선박 엔진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선박들은 대부분 석탄 엔진을 쓰고 있었는데 석유는 액체기 때문에 석탄보다 공간을 훨씬 덜 차지했다. 석유를 사용하는 군함은 엔진 무게가 석탄 군함의 3분의 1, 작업 인원은 10분의 1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검은 연기가 나지 않아 적에게 들킬 가능성도 낮았다.

영국도 석유의 이점을 절실하게 깨닫고 제국 유지를 위해 석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영국 정부는 정보부를 동원해 석유가 다량으로 매장돼 있는 중동 지역에 식민지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석유 엔진은 전 세계 열강들의 해군력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던 시절 석유 확보는 강대국의 최대 과제였다.

1차 대전 이후 석유를 놓고 경쟁하던 미국과 영국이 정치적 동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석유시장은 두 나라 자본주의에도 날개를 달아주었다.

소위 '세븐 시스터스'로 불리는 엑손, 모빌, 걸프, 텍사코, 셰브론, 로열더치셸, 브리티시석유 등의 석유회사는 이때 두 나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회사들은 전 세계 석유의 채굴과 정유, 판매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면서 자국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기 시작한다. 몇 차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석유는 점점 안보자산화되기 시작한다.

엥달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중동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것도 석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최대 석유 생산지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제 석유전쟁은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까지 뛰어들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프리카 산유국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내전에도 석유가 개입돼 있다. 중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석유 확보를 위해 특정 세력에 무기를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의 시대는 안 끝났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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