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녀자'라는 희망...민주주의를 보고 만지기 시작하다 [책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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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은 사회의 주인으로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한다."
북한 남성들은 가부장주의, 공포 정치, 대물림되는 폭력 속에 살면서 여성을 향한 폭력을 내면화시켰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역사상 피지배계급의 하부 정치에서 소비에트 블록의 민주화와 동유럽 시민 사회 성장에 일조한 무수한 여성들을 생각하면, 이제 막 민주주의를 보고 만지기 시작한 북한 여성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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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은 사회의 주인으로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한다."
2016년 북한은 유엔 여성차별 철폐위원회에 이렇게 보고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여성 탈북민으로서 북한 문제에 천착해온 연구자 감희는 책 '북한 녀자로 살기'에서 북한 여성의 현실은 폭력의 일상화에 가깝다고 증언한다. 저자는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여성의 생애주기별 발달 단계를 서술하면서 '남성의 왕국'에서 '문화'가 된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등 북한 여성이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조망한다.
폭력의 기반은 익히 알려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의 국가 폭력이다. 북한 남성들은 가부장주의, 공포 정치, 대물림되는 폭력 속에 살면서 여성을 향한 폭력을 내면화시켰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낮에는 사회주의 밤에는 자본주의'라는 구호를 보자. 감시·처벌 체계에서 혁명 전사 노릇을 하고 불법 행위가 만연한 암시장에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생활양식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 된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척하며 안으로는 무감각과 무력함을 스스로 강요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 약자를 향한 폭력은 내밀하게 일상을 파고들었다.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여성 대상 폭력을 공고화시킨 북한 주민들의 이중적 생활상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졌던 여성들이 암시장에서 경제를 주도하고 당차게 여성만의 매력을 과시하게 된 것이다. 북한 여성은 한류, 유언비어, 마약, 밀주 등의 생산·유통·소비의 비공식적 주체다. 일부 여성은 '여자다움'을 깨고 여성 '돈주'(개인 기업가)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장마당을 중심으로 탄탄한 경제력을 쌓아가며 돈, 자유, 권리와 같은 자본주의 가치와 여성 인권에 대해 자각하는 중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비롯해 탈북 여성의 목소리가 실린 면담 자료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도달한 최종 목적지도 바로 그 지점.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불안과 동요가 극심해지는 한복판에 일상의 저항을 주도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은 작지만 분명한 희망이다. 역사상 피지배계급의 하부 정치에서 소비에트 블록의 민주화와 동유럽 시민 사회 성장에 일조한 무수한 여성들을 생각하면, 이제 막 민주주의를 보고 만지기 시작한 북한 여성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리하여 책의 부제는 '여성과 민주화의 씨앗'이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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