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을 '살인무기 실험실'로 삼은 '스타트업 국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은 피자를 주문하는 일만큼 쉬워야 한다.'
2020년 이스라엘군이 설계한 군사 애플리케이션(앱) 'DAP' 개발 논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피자를 주문하고,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하고,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는 것처럼 앱을 통해 병사들이 표적인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신속하게 사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비인간'과 다름없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표현은 재고돼야 한다.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은 십분 지탄받아야 마땅하나, 이 둔감한 표현은 동등한 두 국가가 정정당당히 겨루는 갈등으로 분쟁의 본질을 축소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빙 둘러 65㎞ 길이의 장벽을 쌓은 결과 팔레스타인인 230만 명이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에 영원히 수용돼 있는 현실을 가린다.
그뿐인가. 이스라엘은 드론을 띄워 팔레스타인을 감시해 왔다. 서안지구에서는 안면 인식 기술을 활용해 팔레스타인인의 생체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때로는 수많은 카메라를 활용해 집 안에 있는 이들까지 추적 감시한다. 팔레스타인인이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모든 움직임과 정보가 기록된다. '스타트업 국가'라는 미명 아래 온갖 정교한 무기와 감시 기술을 개발해 수출하는 이스라엘의 거대한 실험실. 그게 팔레스타인이다.
20년 넘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슈를 취재해온 독립 저널리스트 앤터니 로엔스틴은 책 '팔레스타인 실험실'에서 세계 곳곳에 점령 기술을 수출하는 전쟁 국가가 된 이스라엘의 민낯을 파헤친다. 군사 산업의 기반이 된 초기 자본이 옛 서독으로부터 받은 홀로코스트 배상금이라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악연, 이스라엘의 잔혹한 살상 행위를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책은 중동을 다룬 여느 교양서와 구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탁월한 탐사보도물은 새롭게 공개된 대내외 문서와 관계자 증언을 통해 '군사·기술·산업복합체'가 된 이스라엘의 실상을 용기 있게 드러낸다. 인구 400만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시험한 독창적 지배 기술을 팔아 승승장구하는 '세계 10대 무기 수출국' 이스라엘 말이다.
70여 년간 지속된 팔레스타인과의 무력 분쟁은 모순적이게도 이스라엘의 점령·지배 기술을 홍보하는 '현장 박람회' 역할을 했다. 전투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가열하게 신무기의 성능을 테스트했고, 이를 찍은 영상은 전 세계 무기박람회에서 판매를 촉진하는 광고로 활용됐다. 오죽하면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규정했을까. "이스라엘의 구식 종족민족주의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강경책은 국제사회의 골칫거리였지만 이제 하나의 자산이 되고 있다."
이제는 슬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2018년 튀르키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자말 카슈끄지는 이스라엘 민간 보안기업 NSO그룹이 개발한 휴대폰 해킹 프로그램 '페가수스'로 사우디 정부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추적되고 있었다. 가자지구 상공의 이스라엘 드론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지중해를 순찰하는 데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일부를 소유한 안면 인식 기업 '코사이트AI'는 군중 속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개인도 곧바로 식별해 내는 경찰 보디캠을 개발했는데,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멕시코와 브라질 경찰이 활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그간 거래해온 상대의 면면도 화려하다. 독재자 피노체트의 칠레, 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콜롬비아의 암살대,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간 격리) 당시의 남아프리카공화국, 군사 독재 시기의 아르헨티나, 투치족을 학살한 르완다의 후투족 등이 주요 구매자였다. 이스라엘 민간 기업 '타디란 이스라엘 전자산업'은 인종 청소를 저지른 과테말라 정권을 위해 컴퓨터 감청 센터를 설립했다.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는 책을 이렇게 평했다. "'뭇 민족의 빛'을 자임하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과테말라에서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기회가 생기는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폭력과 잔인한 억압의 수단을 공급하는 나라로 전락했는지에 관한 서글프면서도 추악한 기록." 유대인 무신론자인 저자는 책 첫 페이지에 "정의로운 미래를 위해 싸우는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인과 연대하며"라고 썼다. 책장을 덮고 몰랐던 추악한 현실과 마주한 순간, "정의로운 미래를 위해 싸우는 세계 시민과 연대하며"로 고쳐 쓰고 싶어진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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