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낙연, 측근들에 ‘실무적으로 신당 준비하라’ 지시”
정·김, 둘만 따로 만나 “민주당 상황에 깊은 우려” 공감…‘文 정부 3총리’ 전격 회동 가능성도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총선을 120일가량 앞두고 야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의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이낙연 전 대표가 연일 이재명 당대표를 정면 비판하며 신당 창당 가능성을 띄우면서다. 당 안팎에선 이 전 대표의 행보가 이 대표에 대한 압박용 카드일 뿐이며 실제 탈당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원외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물론, 이 전 대표가 최근 측근들에게 신당 창당을 실무적으로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는 전언도 들리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여전히 이재명 대표에게로 뭉치는 구심력이 상당하다. 친명(親이재명)계가 주류를 이루는 당내에선 이낙연 전 대표의 이탈 가능성뿐만 아니라 당의 분열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선이 많다. 이른바 '이낙연 신당' 행보에 대해서도 그 가능성을 낮게 보지만, 설령 실제 탈당 및 창당으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미풍에 그치고 말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가 최근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 등 당의 원로급 인사들과 접촉하는 등 광폭 행보를 하는 모습에 당내 긴장도는 높아지고 있다.
침묵을 지키던 김부겸·정세균 두 전직 총리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두 전직 총리는 이 전 대표와 각각 만난 것은 물론, 최근 두 사람이 따로 회동한 사실도 확인된다. 이들은 만나서 '민주당의 현재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가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전 대표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당내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원심력도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판이 요동치는 게 민주당만의 상황이 아니란 점이다. 이미 금태섭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회 대표,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가 각각 신당 창당 작업을 마쳤고, 여당에서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본격적으로 당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민주당마저 이낙연 전 대표 등 거물급 인사들이 독자 행보에 나선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양당 구도에서 태풍에 가까운 판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사저널은 그 촉발점의 하나가 될 수 있는 민주당 내부 상황을 이낙연 전 대표의 움직임 등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이낙연 "나의 기다림도 이제 바닥나"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실제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이 전 대표 측 사정을 잘 아는 한 민주당 중진 인사는 통화에서 "이 전 대표가 최근 측근들에게 신당 창당을 실무적으로 준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민주당 인사는 "총선이 4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전 대표가 결심을 하게 되면 그 즉시 창당에 나서야 한다"며 "실무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는 그런 상황 판단 속에서 이뤄진 것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확인되고 있는 이 전 대표의 발언은 그러한 의지들을 정확히 반영한 듯했다. 그는 연일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을 작심 비판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11월28일 자신의 싱크탱크 '연대와 공생'이 개최한 포럼에서 "제1야당 민주당은 오래 지켜온 가치와 품격을 잃었다"며 "과거의 민주당은 내부 다양성과 민주주의라는 면역체계가 작동해 건강을 회복했으나 지금은 리더십과 강성 지지자들 영향으로 그 면역체계가 무너졌다"고 일갈했다. 그는 포럼 직후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갈래의 모색이 있다. 국가를 위해 제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항상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이재명 대표 거취와 관련해 재판 등 사법 리스크를 거론하며 "당에서 중지를 모으고 결단할 것은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내부 위기의식에도 (당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 나의 기다림도 이제 바닥이 나고 있는 것 같다"며 결단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평소 발언에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전 대표의 최근 발언들을 두고 그가 사실상 결심을 세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신당 창당 등을 향한 이 전 대표의 뜻은 이미 분명하나 오히려 측근들이 만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 주변에서 들렸다.
이 전 대표가 최근 여러 자리에서 다당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그는 11월28일 포럼에서 "다당제를 통해 무당층을 국회에 포용하는 것이 정치 양극화 극복과 정치 불안전 예방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아온 한 인사는 "이 전 대표가 최근 거론하는 다당제라는 표현은 굉장히 유서 깊은 말이다. 이 표현을 쓴 이들의 운명은 결국 신당이었다"면서 "김종필 전 총리도 항상 다당제를 얘기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입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의 주변 인사들의 최근 행보도 주목됐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원외 인사들이 신당 창당에 가까운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신경민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병석 모색과대안 대표와 김효은 전 이낙연 캠프 선대위 대변인 등이 주축인 '민주주의실천행동'(실천행동)은 11월26일 "우리는 새로운 정치·정당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면서 예비당원 모집을 시작했다.
이 전 대표나 실천행동 측은 서로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치권에선 추후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에 나설 경우 실천행동이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앞의 민주당 중진 인사는 "이 전 대표와의 교감 없이 측근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였을 리는 없다"며 "예비당원을 모으는 등의 작업 역시 이 전 대표의 창당을 실무적으로 준비하라는 지시의 일환일 것"이라고 말했다.
'예비당원' 모집 나선 원외 측근 인사들
김효은 전 대변인은 통화에서 실천행동의 행보에 대해 "맨 처음부터 신당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한 것보다는 지금의 양극화된 극단주의 정치 체제가 바뀌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 새로운 정치가 나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아직까지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아니며 일단은 뜻에 공감하는 분들을 모아서 목소리를 키우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전 대표와의 교감 속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질문엔 "(이 전 대표와) 어떤 의논을 하거나 하나의 목표를 갖고 시작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여전히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까지 이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명계 민주당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신당이 성공하려면 구심점이 매우 중요한데 이 전 대표가 비명계를 대표할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금 목소리를 내는 건 이재명 대표 압박용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관계자도 "이 전 대표와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사람들이야 많을 수 있고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당을 나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비용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들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내년 선거에서 신당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느냐는 점에서 매우 회의적"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이 전 대표의 민주당 탈당 가능성을 낮게 봤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당내 대권주자라는 위상이 있고 만일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 등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이 대안이 될 수 있을 텐데 당을 떠날 생각을 할 것 같진 않다. 또 지금까지 이 전 대표의 그간 선택이나 성향들을 봐도 (신당 창당)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대신 이 전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봤다. 박 평론가는 "목소리를 내야 할 타이밍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다독일 필요성도 있고 이 대표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대안이 자신이라는 점을 당내에서 의심하지 않도록 존재감을 키우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다르게 전망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탈당을 하거나 창당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이라면서도 "이 전 대표가 당내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그런 걸 보면 유인은 분명히 있는 듯하다. 환경만 조성되면 나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현역 의원의 동참이나 다른 전직 총리의 연대 여부 등이 중요할 것 같다"고 부연했다.
실제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도 원심력이 점점 커지는 분위기가 분명 감지된다. 12월3일엔 비명계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이 "(민주당은) 도저히 고쳐 쓰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비명계 현역 의원의 첫 반발성 탈당이었다. 이 의원은 탈당 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공개 목소리는 내지 않지만, '개딸 정당' '이재명 사당'이 되어가는 당에 대해 걱정하는 의원들이 훨씬 더 많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 의원은 탈당 직후 이낙연 전 대표와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통화에서 이 전 대표는 이 의원에게 "(거취) 결정은 좀 지켜보면서 하자"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부겸-정세균, 양당제 타파 필요성에 공감
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등 현역 의원 4명으로 이뤄진 비명계 의원 모임 '원칙과 상식' 역시 이 대표와 당내 강성 지지층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점차 더 키우고 있다. 이들은 탈당이나 신당 창당에 대해선 아직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최근 이낙연·김부겸·정세균 등 문재인 정부 '3총리'와 접촉을 시도하는 등 추후 행보를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탈당 전에 원칙과 상식 의원들과 여러 차례 대화했다는 이상민 의원은 "원칙과 상식 의원들도 연말연초엔 (탈당)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세 전직 총리의 움직임은 야권 내 최대 관심사다. 이 전 대표가 최근 김·정 전 총리와 각각 만나 당내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3총리 연대설'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부겸 전 총리의 경우 최근 침묵을 깨고 민주당 지도부를 포함한 정치권이 선거제 회귀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어렵사리 물꼬(준연동형 비례제)를 트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희화화시킨 정치권이 다시 퇴행의 길을 가려 한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갈했다. 그는 정치 재개 선언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기여할 상황이 되면 움직이겠다"며 역할론을 부인하지 않았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는 이달 초 서울 모처에서 따로 식사 자리를 갖기도 했다. 양측 사정을 두루 아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만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도 "두 전직 총리가 민주당의 현재 당내 여러 문제 등 상황에 대해선 '이대로 안 된다'는 깊은 우려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특히 두 사람은 민주당이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에 동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옳지 않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데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두 전직 총리는 '지금의 양당제 상황에서는 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할 수 없다'는 데도 같은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최근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선 '생각해본 바도 없고 고려한 바도 없다'며 일단 선을 긋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3총리 신당 창당설, 연대설 등은 실현될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바로 앞서 언급한 민주당 관계자는 "두 분의 생각은 명확하나 주변 측근들 사이에선 이 전 대표를 포함해 세 총리가 연대해 민주당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정 전 총리는 12월 내 다시 회동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총리가 전격적으로 함께 만날 가능성도 있다.
이 전 대표와 당 밖 세력의 연대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여러 제3세력 시도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해 왔다. 그는 "국민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보여드리는 것이 정치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닌가. 새로운 선택지가 필요하고 제3세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신당 세력도 호응하는 분위기다. 한국의희망 창당을 주도한 양향자 대표는 11월28일 이 전 대표 싱크탱크인 '연대와 공생' 포럼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여당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연일 비판하며 신당 창당을 도모하고 있는 이준석 전 대표도 최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의 연대설에 대해 "이 전 대표는 보수 쪽에서 보기에도 온건한 민주당 쪽 인사다. 이낙연·김부겸과 같은 분들은 제가 싫어할 이유도 없고,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며 추후 소통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저널에 "이준석·이낙연·김부겸 등 합리적이고 중량급 인사들이 총선에서 힘을 뭉치면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에는 큰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신당은 결국 이재명 대표에게 달렸다"
이낙연 전 대표의 고민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는 신당 창당 등 추후 행보에 대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는,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걸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며 "너무 길게 끌면 안 되니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때가 되면 말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 전 대표의 결단 시점에 대해 "결국 연말연시"라고 전했다. 이 인사는 이 전 대표 결심의 결정적 변수에 대해 "어떤 사람이 같이할 것인가, 또 얼마나 핍박이 가해지느냐가 될 것"이라며 "또 이 전 대표가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강한 분인데 중요한 건 지금의 민주당이 회복 탄력성을 갖고 있느냐다. 고민 끝에 그 탄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시점이 오면 결단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결국 이재명 대표에게 달려 있다. 이 전 대표가 이유 없이 독자적으로 결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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