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더 살아갈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 [플랫]

플랫팀 기자 입력 2023. 12. 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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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주인공에게 그의 소꿉친구가 열심히 드라마 내용을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정신건강의학과 간호사인 주인공 정다은(박보영)은 가까운 환자를 자살로 떠나보내고 자신도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 정신병동에 입원한 상태였다. 친구 유찬(장동윤)은 다은이 좋아하는 드라마들을 챙겨보고 면회 갈 때마다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다은이 “다음 화가 궁금해서라도 살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제공

주류 시청 형태를 ‘몰아보기’로 바꿔버린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나온 대사라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어떤 드라마에는 그런 힘이 있다. 자신과 다른 여성들의 목숨을 구했던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처럼 어둠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 2023년의 드라마계를 돌이켜보면,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메시지가 강렬한 작품들이 큰 호평을 얻었다. 앞서 예를 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대표적이다.

생명존중 캠페인 시리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은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을 관습적 사건들로 펼쳐내기보다, 정신건강에 관한 전문가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한다. 에피소드 곳곳에 자연스럽게 삽입되는 의료진의 교육, 연구, 상담, 치료 장면들은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를 명시적인 문장으로 강조하고 있다. 7회, 정신건강의학전문의 황여환(장률)이 자살생존자 콘퍼런스에서 발표하는 장면이 단적인 예다. “우리는 그냥 생존자입니다. 현재 진행형인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멈추지 말고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환의 말은 이 작품이 버거운 현실을 버티는 모든 이들을 향한 응원의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또 다른 올해의 수작 SBS <악귀>의 메시지도 빼놓을 수 없다. 장르드라마의 거장 김은희 작가가 극본을 쓴 이 작품은 악귀에 씐 여자와 악귀를 보는 남자가 악의 근원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다. 전작들을 통해 억울하게 죽임당한 이들을 위한 애도의 서사를 써내려왔던 김은희 작가는 본격 오컬트 세계로 들어가 망자들의 한을 직접 어루만진다. 실제로 <악귀>의 서사는 퇴마 중심의 오컬트물과 달리 씻김굿의 성격에 가깝다. “악귀를 만나면 이름이 뭔지, 왜 여기에 남은 건지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민속학 박사 염해상(오정세)의 말대로, 구산영(김태리)은 악귀의 사연에 근접해가는 과정에서 점점 그의 한을 이해하게 된다.

<악귀>의 마지막 장면은 전통적 기원 행사인 선유줄불놀이 현장에서 산영이 해상과 함께 기도를 올리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악귀가 마음의 틈을 노릴 만큼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던 구산영이 악귀를 보낸 뒤 힘주어 말한 마지막 대사는 “그래, 살아보자”였다. 이는 잔혹한 이기심에 희생당하고 악귀로 변한 아이의 가장 절박한 소원이기도 했다. 더욱이 이 대사가 희귀병을 앓는 산영이 아예 시력을 잃고 어둠의 세계에 둘러싸였을 때 고백한 다짐이라는 점은 생의 존엄과 가치에 더 힘을 싣는다.

드라마 <연인> mbc 제공

올해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MBC <연인> 역시 같은 메시지를 강조한다. 병자호란기를 배경으로 한 <연인>은 가장 혹독한 시절에서도 살아남고자 애썼던 전쟁생존자들의 서사라 할 수 있다. 특히 역사에서 지워진 조선인 포로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작품의 주제를 제일 압축적으로 전달한 장면은 주인공 이장현(남궁민)과 소현세자(김무준)의 13회 대화 신이다.

청으로 끌려온 조선인 포로들의 비참한 삶에 참담함을 느끼는 소현에게 장현은 말한다. “조선의 포로들이 치욕을 참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들은 살기를 선택한 자들이옵니다. 배고픔과 매질, 추위를 이겨내며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삶을 소망하고 있나이다. 하루를 더 살아낸다면 그 하루만큼 싸움에서 승리한 당당한 전사들이 되는 것이옵니다.”

요컨대 올해의 화제작 중에는 인간 삶에 대한 존중과 응원을 담은 작품들이 유독 많았다. 이는 우리 시대가 그만큼 버티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드라마를 정의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으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와닿는 이야기는 다만 하루를 더 살아갈 용기를 주는 이야기다.

▼ 김선영 TV평론가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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