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골목, 사라진 마을···길냥이 시선으로 본 도시의 뒷모습[그림책]

집으로 가는 여정
표현우 글·그림 | 노란상상 | 48쪽 | 1만7000원
책은 혼잣말로 시작한다. “내 가 살 던 곳 은 사 라 졌 다.”
한 바닥 펼쳐진 종이 위에 덩그러니 쓰인 현실 인식이 막막하다. 어느 날 집이 무너져 내려 살 곳을 잃은 고양이는 쫓기듯 더 높은 동네로 오른다. 그곳에서 가끔 저 멀리 떠나온 곳을 바라본다. 한때 그의 집이던 그곳에는 어느새 높은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층 건물이 솟아 있다. 고양이는 말끔해진 아랫동네와 다르게 낮고 낡은 집들이 군데군데 금 간 담장을 공유하는 달동네를 거닌다. 어쩌면 여기서는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서.


그러나 이 동네에서도 또 집이 하나둘 부서진다. 다시 떠날 때가 왔구나. 고양이는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던 찰나 어디선가 작고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떠돌이 고양이는 가녀린 비명을 외면하지 못한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힘겹게 따라오는 새끼 고양이의 발길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추운 겨울 동안 둘은 서로의 온기에 기대 길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 그들은 마침내 ‘집’에 가 닿을 수 있을까.
표현우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부산 범일동과 서울 삼선동, 홍제동, 정릉동 등 재개발 지역의 오래된 골목을 소재로 삼아 도시 풍경에 깃든 삶의 흔적을 그려왔다. 이번엔 10년 가까이 그려온 골목길 연작을 아우르며 마침표를 찍듯 길고양이의 시선으로 도시의 뒷모습을 그려냈다. 세밀한 펜선으로 담아낸 회색빛 풍경은 언뜻 삭막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따스하다.
늘어진 전선과 무너진 집들,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가 뒤얽힌 풍경 사이에는 누군가가 정성스레 가꾼 화분, 배고픈 고양이를 위해 준비해둔 밥자리 같은 상냥함이 스며 있다.
이 넓은 도시에 내 몸 하나 누일 곳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머무를 곳을 찾아 끊임없이 떠도는 건 고양이만의 일이 아니다. <집으로 가는 여정>은 쉼 없이 부수고, 짓고, 허물어지는 버석한 이 도시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유수빈 기자 soop@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익표 “방미심위, ‘김어준 뉴스공장’ 조사할 것···제가 ‘출연 취소’ 청와대 고위 인사”
- 정부도 욕먹인 김의겸 사퇴···새만금개발청장 취임 8개월 만에 ‘6월 재선거’ 출마
- 광화문 BTS 공연 중동발 테러 가능성 대비…‘아미’ 지키러 경찰특공대 출동
- ‘친명 배제, 후회하나’에 김동연 “김용 전 부원장에 가장 미안···정치초짜 때라 잘 몰랐다
- ‘랍스터 키우기’ 열풍 불던 중국, 이젠 다시 지운다고?
- 택시기사 의식 잃을 때까지 무차별 폭행···50대 승객 살인미수로 송치
- 트럼프 “오늘 쓰레기들에게 무슨일 생기는지 보라” 이란 강공 예고
- 대구 구청서 숨진 30대 공무원···직접 신고에도 ‘소극적 수색’ 벌인 소방·경찰
- 허위 보도자료 “몰랐다”던 박희영 용산구청장, 보좌관이 “전달했다” 진술하자 “안 봤다”
- 중국 ‘김치 공정’ 모르나···김치를 ‘파오차이’로 쓴 어이없는 서울시 홍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