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직도 일제 만행 뻔뻔히 부정…다큐로 피해 증언 되살려"

오보람 2023. 12. 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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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목소리' 재일교포 박수남 감독…"한국은 내 조국"
"극우단체 '조선인 죽여라' 발언 일상…손자에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다큐멘터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박수남 감독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여기 사는 사람 중 열다섯 살 위로는 예배당에 모이라고 했어요. 저번에 자기들이 잘못해서 화해하러 왔다고요…나만 살았어요. 그런데 '계집자식 남은 거는 내일 오시에 마저 죽이러 온다' 그러더군요."(제암리학살사건 생존자 전동례 씨)

"세상 사람들은 해방이 됐다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기쁘게 뛰어다니는데 저는 원폭 때문에 몸이 썩어 들어갔습니다. 몇 년이 돼도 온몸에서 진물이 나서 아무도 가까이 안 오려고 했어요."(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 조선인 김분순 씨)

"자살하겠다고 몇 번이고 암벽에서 바다로 뛰어들려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그때는 죽는 것만 생각했지요…미쓰비시 제강소, 방공호, 군수 공장에 우리 조선 정신대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 죽어서 굳어 있었어요."(군함도 탄광에서 강제노역한 서정우 씨)

일제에 의해 삶이 짓밟힌 그 시절 민초들의 증언이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재일교포 2·3세 모녀 감독 박수남(88)·박마의(55)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를 통해서다. 박수남 감독이 1980∼1990년대 촬영한 16㎜ 필름을 복원해 만든 작품이다.

필름에는 일본군 '위안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폭, 강제 동원·노역 등의 피해를 본 이들의 인터뷰가 담겼다.

박수남 감독은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이 필름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박마의 감독이 어머니의 눈이 돼 길이만 30㎞가 넘는 필름을 복원하고 편집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연로한 나이에 건강도 좋지 않은 박수남 감독이 그토록 영화화를 고집한 이유가 뭘까.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6일 경기 고양시 작업실에서 만나 물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속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일본이 아직도 일제 만행을 왜곡하거나 그런 사실이 없다는 뻔뻔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억울하고 부아가 치밀었다"며 "이런 분노가 영화를 만드는 에너지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은 침략당한 우리나라 역사를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을까요? 저는 우리 정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나 정부가 아니라 한국 기업이 보상해주겠다고 하는 걸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침략의 역사를 안다면 농담으로도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겨우 거동하고 시력 역시 빛 정도만 구분할 수 있는 상태지만, 일제의 만행과 한일 정부에 대해서는 큰소리로 조목조목 비판했다.

"화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는 "돈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영화를 만드는 게 저만의 투쟁이기 때문에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 부부 사이에서 1935년 태어난 박 감독은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살았다. 그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조국이기 때문에 한국은 우리나라"라며 "남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던 그는 1958년 이른바 고마쓰가와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진우 구명운동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대일 투쟁을 시작했다. 박 감독은 1963년 그와 주고받은 서신을 바탕으로 '죄와 죽음과 사랑과'를 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재일조선인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증언집과 다큐멘터리를 내놨다.

상영회를 열 때마다 극우단체가 몰려와 방해하고 이들의 협박도 매일 같이 당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누가 해결해주는 걸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속 한 장면. 사진은 히로시마 원폭 피폭 증언하는 한국인 김분순 씨.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되살아나는 목소리'에는 일제 피해자 증언뿐만 아니라 재일교포들이 현재 겪는 차별과 혐오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극우단체의 '혐한 시위'가 대표적이다.

박 감독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에 사는 우리는 아직도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인을 향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겁니다. 도쿄 긴자 거리에서도 '조선인을 모두 죽여라'고 소리치는 게 일본의 현실이에요. 그걸 들은 제 손자, 재일교포 4세인 이 아이에게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의 딸인 박마의 감독 역시 자라면서 수없이 손가락질당했다고 한다. 그와 동갑인 한 재일교포 3세 소년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조선인을 무시하지 마라. 나는 조선인이 아니다. 우주인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박수남 감독은 전했다.

그는 "일본 정부에서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은 탓"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의 다큐멘터리를 본 일본인들은 "그런 일이 있었던 걸 몰랐다.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편지를 보내오거나 영화 제작비를 보탠다고 했다.

박 감독은 "극우단체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반성하는) 일본인들도 있다는 걸 꼭 말하고 싶다"고 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사람도 모두 일본인으로, 5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모았다.

박 감독의 아버지도 일본인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당시 목숨을 구했다. 아버지는 "내 목숨을 구해준 건 네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은혜를 갚기 위해 훌륭한 '조선인'이 되어야 한다"고 딸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속 한 장면. 사진은 조선인 정신대 피해자 전시 보는 군함도 강제노역자 서정우 씨.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지난 10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다. 당시 영화를 본 청년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박 감독은 떠올렸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일제강점기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모르거나, 이들의 고통을 오롯이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게 이 영화의 취지"라고 했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여자들이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어요. 나를 보세요. 지금 나이가 100살 가까이 먹어가는데, 이런 영화를 만들잖아요. 대통령도 될 수 있고, 영화 만드는 이 늙은 할머니처럼 감독도 될 수 있어요. 희망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싶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속 박수남 감독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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