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 사태 딛고 몸값 8000억 찍은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 그래도 시장 반응은 “글쎄”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최근 8000억원에 육박하는 몸값을 인정받고 1000억원대 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AI반도체 비상장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달성했다.
업계에서는 리벨리온이 이른바 ‘파두 사태’에도 불구하고 펀딩에 성공한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AI 반도체 업체들은 파두 여파로 기업공개(IPO) 등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비용을 쓰면서도 아직 의미 있는 수준의 매출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 지나치게 큰돈이 쏠리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나온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리벨리온은 최근 포스트(투자 후) 기업가치 7900억원을 인정받고 총 17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번 라운드는 시리즈B다. 지난해 6월 몸값 3500억원에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지 약 1년 반 만에 기업가치가 4000억원 이상 오른 것이다.
다만 아직 약정을 앞둔 기관들이 더 있어, 최종 기업가치는 8000억원 안팎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일각에서 리벨리온의 기업가치가 ‘9000억원’이라고 알려진 것은 주주명부에 기재된 주식 수 뿐 아니라 향후 전환될 스톡옵션 등을 모두 더해 풀 다일루션(완전 희석)을 가정해 구한 값이다. 통상 스톡옵규의 규모는 전체 주식 수의 10% 내외다.
이번 라운드에서는 전략적투자자(SI) KT와 KDB산업은행이 각각 300억원씩,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자회사 파빌리온이 2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KB증권 신기술사업금융부와 노앤파트너스도 200억원을 투자했다. SV인베스트먼트와 IMM인베스트먼트도 소규모로 투자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펀딩 과정에서 SI들과 재무적 투자자(FI)들은 온도 차를 보였다고 한다. 엑시트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은 SI들은 6200억원의 프리(투자 전) 밸류에이션을 상대적으로 쉽게 인정해줬지만, FI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기관은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투자금을 줄였다고 한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시총 1조원을 바라보는 AI 반도체 기업이 나온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파두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몸값에 베팅하는 게 과연 맞는지 의구심은 든다”고 말했다.
파두는 데이터저장장치(SSD) 컨트롤러를 개발하는 업체로, AI 반도체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 8월 7일 상장했다. 상장 후 주가가 급등하며 시총이 2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2분기 매출액이 59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투자자들의 공분을 샀으며, 현재 시총은 87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IB 업계에서는 이미 AI 반도체업체들이 내년 중 상장하거나 추가 투자를 받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파두 사태를 본 한국거래소 입장에선 AI 반도체 기업을 더 까다롭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상장이 어려워지면 FI들도 지갑을 열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 기업이 스스로 의미 있는 수준의 매출을 내지 못한다면 사업에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파두가 내년에 의미 있는 매출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AI 반도체 업체들은 매달 설비 유지에만 수십억원을 쓰고 있으며 팹에 들어가면 수백억원을 쓴다”며 “천억원을 투자받아도 금방 소진되는데, 스스로 매출을 내지 못하고 계속 펀딩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리벨리온은 그동안 매출이 발생하지 않다가 올해 5월부터 KT에 납품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3분기 매출액을 수십억원 수준으로 추산한 바 있다.
지난 7월 기업가치 6800억원을 인정받고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한 퓨리오사에 대한 시각도 비슷하다. 퓨리오사는 지난해 연 매출액 3억원, 영업손실 501억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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