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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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비극이 일어나면 우린 습관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 이해하려 든다.
가정폭력 또는 학교폭력을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우리를 이해시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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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투마킨 지음│서제인 옮김│을유문화사
하나의 비극이 일어나면 우린 습관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 이해하려 든다. 가정폭력 또는 학교폭력을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우리를 이해시키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우린 그들을 이해할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호주의 문화사학자 마리아 투마킨은 “타인을 이해하게 됐다는 행복한 결말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환상”이라고 말한다.
책은 투마킨이 상처 입은, 어딘가가 ‘부서진’ 사람들과 만나 대화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극단적 선택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 마약에 중독된 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 그런데 투마킨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통념과 벗어나 있다. 별다른 가정의 불화나 큰 정서적 외상이 없어 보였음에도 프랜시스의 여동생 케이티는 “그냥 이게 최선이에요. 스스로를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해 주던 제 메커니즘이 고장 났어요”라는 글을 남긴 채 16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우수한 성적과 뛰어난 사회성으로 학교 대표까지 맡았던 어떤 학생은 졸업식 전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런가 하면 최선을 다해 홈리스를 도운 결과 그를 사망케 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소설가 앤드루 솔로몬은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의 부모님을 찾아가 인터뷰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에서도 곧잘 발견되는, 인간은 타인을 조금도 알아낼 수 없다는 끔찍한 사실의 피해자.”
“자신의 손자를 유괴해 임시로 만든 비밀 감방에 은폐한 부부가 어제 수감됐다”는 제목으로 보도된 사건의 피의자인 소년의 할머니 이야기는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의도적인 무지”의 끔찍함을 전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는 집에 가기 싫다는 소년을 본인의 집으로 데려와 임시벽으로 숨긴 비밀 공간에서 몇 개월간 키웠다. 깡패에 마약상인 소년의 부모로부터 소년을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였으나 법원은 할머니에게 징역형을 내리고 소년이 21살이 될 때까지 만남을 금지했다. 21살이 돼 할머니에게 돌아온 소년은 알코올의존증을 앓고 있었고 부모에 관한 이야기에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다. 저자는 이 사건을 “제도의 실패”이자 “문화의 파산”이라 이야기한다.
이 책을 놓고 몇몇 비평가는 “대책 없이 암담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투마킨은 그 암담함을 직시하는 것이 ‘이해’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무시하면 사람들은 상징의 집합체로 변해 버린다. 일종의 도구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의 어떤 점이 우리와 다른지 알아차리는 것이며, 또한 그 다른 점을 굳이 비틀어 숭고함에 가까운 무언가로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술술 읽기는 쉽지 않다. 여러 에피소드가 순차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두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섞이기도 한, ‘부서진’ 형태의 서술 방식이기에 그렇다. 이 독특한 글의 구성은 이 세상 모든 비극이 순차적이지 않으며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다고, 나아가 이 모든 일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알리고 있는 듯하다. 432쪽, 1만8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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