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둔화에 재고 쌓이지만, 그래도 전기차는 달린다

한겨레 2023. 12. 8. 09: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이코노미 인사이트_Economy insight
경제의 속살
치열한 전기자동차 경쟁 속에 테슬라는 미국과 중국에서 지속적으로 가격을 내리며 가격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2023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국제서비스무역교역회(CIFTIS)에서 테슬라의 신형 모델3(세단)와 모델X(SUV)가 전시돼 있다. REUTERS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왔던 전기자동차의 고속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전세계 모든 자동차회사가 앞다퉈 공격적인 전기차 생산 목표를 제시하고, 그렇지 못한 회사는 주가가 폭락하거나 최고경영자(CEO)까지 교체되기도 했던 게 무색하다. 최근 포드는 전기차 투자 계획 중 120억달러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2026년 가동하기로 했던 에스케이(SK)온과의 배터리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의 미국 켄터키 2공장 가동 일정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제너럴모터스는 일본 혼다와 추진하던 50억달러 규모의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2024년 중반까지 누적 40만 대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폐기했고 미시간주에 건설하기로 했던 전기 픽업트럭 공장의 가동 시점도 1년 연기했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만들던 미국 테네시 배터리 공장 가동 일정도 미뤄졌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테슬라도 예외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는 엄청나게 유능한 배지만 폭풍이 몰아치는 경제 조건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알고 있고, 이는 새 차를 사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수요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니 테슬라의 실적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잇따른 투자 속도 조절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파나소닉은 감산을 선언했다. 우메다 히로카즈 파나소닉 최고재무책임자는 2023년 9월까지 일본 내 배터리 생산을 줄였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을 제외하면 9월까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손실을 봤다”며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15% 하향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자동차회사들이 전기차 생산 목표를 축소하는 건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2023년 초까지만 해도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재고는 약 52일치 수준으로 비슷했다. 하지만 최근 내연기관차는 여전히 52일 안팎이지만 전기차 재고는 97일이다. 이제 전기차를 사기 위해 주문을 해놓고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는 예상된 상황이다. 얼리어답터들은 충전의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전기차를 구매한다. 하지만 ‘평범한’ 소비자가 전기차를 사는 대중화 단계로 가려면 전기차 충전소가 충분히 많이 보급돼야 한다. 전기차 이용자는 여전히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특히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는 여름과 겨울에는 언제 차가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소비자는 점차 보수적으로 전기차를 구매하는데 가격 부담은 커졌다. 전기차는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연기관차보다 가격이 높다. 대부분 사람은 할부로 자동차를 구매한다. 최근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할부 금리도 올랐고, 소비자는 이를 실질적인 자동차 가격 인상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에 더해 전기차에 지급되는 보조금까지 축소되고 있다. 중국은 2023년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폐지했다. 노르웨이는 자동차를 살 때 부과하는 세금을 전기차는 면제해줬지만 2023년부터는 부과한다. 스웨덴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폐지했고 독일도 보조금을 줄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팔리는 캘리포니아도 보조금 축소를 검토한다.

전기차 수요는 둔화하는데 중국발 배터리의 공급과잉 우려가 나타난다. 영국 원자재시장조사업체 CRU에 따르면 2023년 중국 배터리 생산 능력은 1500GWh(기가와트시)로, 예상 수요치인 636GWh의 두 배가 넘는다. 약 2200만 대의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규모인데,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중국 자동차의 연간 생산량과 비슷하다.

배터리 공급과잉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에서 비롯됐다. 경제성이 없어도 보조금을 받기 위해 너도나도 배터리를 만들어 점유율을 확대했고 결국 가격이 폭락하는 행태가 발생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등 다른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이 했던 방식과 유사하다”며 “배터리 산업에 선발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과잉생산을 할 경우 아직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한 다른 국가 배터리 기업들은 배겨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발표한 공장 증설 계획을 더하면 2027년까지 전기차 수요보다 거의 네 배나 더 많은 배터리가 생산된다.

여러 국가가 전기차 보조금은 축소하지만 충전소 확대에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 대형 쇼핑몰 내 전기차 충전소 모습. 연합뉴스

배터리 원자재의 과잉투자로 원자재 가격도 급락했다. 리튬 가격은 2023년 초 킬로그램(kg)당 472위안(약 8만5천원)에서 11월 초 현재 154위안으로 67%나 급락했다. 세계 최대 리튬업체 미국 앨버말(Albermarle)은 8월 초만 해도 2023년 순매출 증가율을 40~55%로 전망했다가 최근 30~35%로 하향 조정했다. 2023년 초 300달러에 육박하던 앨버말의 주가는 124달러까지 추락했다.

가격 폭락을 유발하는 중국 회사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중국 리튬산업 1, 2위를 다투는 톈치리튬과 간펑리튬 모두 처참한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톈치리튬의 매출액은 17.1% 줄었고 순이익은 무려 70.9% 급감했다. 간펑리튬 역시 매출액은 42.8%, 손익은 97.9% 감소했다. 그럼에도 신규 투자는 멈추지 않는다. 최근 중국 쓰촨성에 있는 리튬광산 탐사권 경매가 있었는데 시초가의 1300배 수준인 5억8천만달러(약 7500억원)에 낙찰됐다.

치열한 가격경쟁

이익 감소에도 신규 투자가 이어지는 이유는 전기차 전환의 방향성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열한 전기차 경쟁 속에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가격 격차는 좁혀졌다. 테슬라는 미국과 중국에서 지속적으로 가격을 내리며 가격경쟁을 부추긴다. 국내에서는 저렴한 인산철배터리를 장착한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며 가격을 2천만원 이상 낮췄다. 현대차도 아이오닉5 가격을 480만원 인하하기로 했다.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비야디(比亞迪, BYD)는 11월 한 달간 5개 차종의 가격을 최대 10% 추가 할인해주며 물량 공세를 벌였다.

내연기관차와의 격차가 좁아질수록 전기차 대중화는 더 가속화할 수 있다. 또 여러 국가가 전기차 보조금은 축소하지만 충전소 확대에는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은 주유소에 급속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독일 전체 주유소의 80%가 150㎾ 이상의 급속 충전 옵션 제공을 의무화하는 첫 유럽 국가가 될 것”이라며 “전기차 운전자들은 주행거리 걱정을 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환경부는 2024년 전기차 충전기 구축 지원에 2023년보다 44.3% 늘어난 436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4만 기에 불과한 전기차 충전기를 2025년 59만 기, 2027년 85만 기까지 늘릴 계획이다.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동안, 전기차 가격은 점차 내려가고 전기차 충전소는 더 많이 설치되고 있다. 이 과정은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들에는 혹독한 시간이다. 판매는 안 되는데 가격은 낮춰야 하고 경쟁에서 탈락한 회사는 퇴출당한다.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체 웨이마자동차(威馬汽車)는 상하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웨이마는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업체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주목받던 스타트업체다. 웨이마는 2023년 8월까지 고작 1387대를 팔았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도 전에 결국 파산의 길로 갔다. 2023년 6월에는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던 전기차 스타트업 바이텅자동차(拜騰汽車)가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 루시드모터스(Lucid Motors)는 2023년 생산 목표를 2만 대에서 1만 대로 낮췄지만 이조차 달성이 거의 불가능하며, 1300여 명을 해고했다. 전기트럭 제조사인 로즈타운모터스도 파산신청을 했다.

방향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현상은 속도 조절일 뿐 방향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자동차회사들도 인지한다. 서강현 현대차 부사장은 “내년 전기차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전기차 생산 및 개발 투자 등을 줄일 계획은 없다. 잠깐 장애물이 있더라도 시장은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대중화 단계에서 장애물을 만났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외나무다리다. 이제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뿐 아니라 인프라 확충, 전력의 친환경 전환 등 종합적인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자동차회사는 차량을 많이 만드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요구)에 맞는 가격, 상품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갈 길 바쁜 전기차 대중화의 길목에서 중국발 공급과잉은 자동차 및 배터리 회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변수다. 그래도 결국 깊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 살아남는 기업만이 친환경차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되리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