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위주 ‘의료용 마약류’ 관리, 국민건강 위협한다

한겨레 2023. 12.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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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장창현 | 느티나무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지난 11월22일 정부는 제7차 마약류대책협의회를 통해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의료용 마약류 관리체계 개편이다. 의사의 처방 투약금지 기준을 강화하고, 처방 시 환자 투약 이력 확인을 의무화한다. 의료용 마약류를 목적 외에 투약·제공하는 경우 자격정지 1년을 부과한다고 한다.

이번 대책으로 의료용 마약류,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에 의사들의 신중함이 좀 더 깃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염려하는 면이 있다. 이미 향정신성의약품을 장기간, 다량 처방받은 환자들에게 “이제는 국가에서 이 약들을 마약류로 엄격하게 관리하니 처방을 쉽게 드릴 수 없다”며 의사들이 처방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인 필자의 판단으로 이러한 처방 행태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의료 일선에서 일어난다면 이는 의료용 마약류의 쉬운 사용만큼이나 위태로운 의료적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발표 전날, 한국방송(KBS) ‘시사기획 창’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항불안제와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을 장기 복용하며 본인도 모르게 중독 증상을 겪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약을 끊었을 때 금단 증상을 겪게 된 사례를 방송했다. “살기 위해 약을 끊자 지옥이 시작됐다”는 사례자는 약의 부작용과 의존성에 대해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했다. 마약류가 한 개인의 삶을 황폐화하는 것은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용 마약류는 의사의 처방을 통해 환자가 사용을 시작했기 때문에 처방한 의사는 이를 잘 덜어갈 수 있도록 지혜롭게 잘 도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기대와 다른 것 같다.

필자는 최근 한 대학의 임상약학대학원에서 ‘노인에 대한 정신과 약물의 신중한 사용’에 대해 강의하던 중, 현직 약사인 한 학생에게서 며칠 전부터 마약류라는 이유로 졸피뎀 처방을 갑자기 중단한 의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약을 쉽게 처방한 만큼 쉽게 중단한다면 이러한 의존성 있는 약물들의 금단증상으로 인해 국민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벤조디아제핀과 수면유도제 금단으로 인해 심리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경험할 수 있다. 심리적 증상으로는 불안, 짜증, 안절부절, 공황 발작, 광장 공포증, 분노, 불면, 기분의 고양, 이인증, 환각 등이 있을 수 있다. 신체적 증상으로는 두통 등 통증, 저린 느낌, 근력 저하, 떨림, 어지러움, 심하게는 경련 발작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자낙스의 경고’에서도 벤조디아제핀 금단 현상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살하기 위해 산을 오르던 약물 이용자의 사례를 볼 수 있다.

중독성 있는 약물의 갑작스러운 중단은 운항 중 갑자기 급강하해 불시착하는 비행기와 같다. 환자가 위험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물질 중독은 재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고 해당 물질의 영향을 서서히 줄여가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알코올 중독도 마찬가지다. 술의 과도한 사용은 가바(GABA)라는 뇌 활성 억제 효과를 가진 신경전달물질의 과잉을 유도한다. 갑자기 술을 끊으면 뇌 활성 억제 효과가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되고 뇌의 과잉 활성화와 불균형이 생겨 가볍게는 손 떨림부터 심하게는 급성 혼돈인 섬망과 경련 발작이 생길 수 있다. 심지어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 재활치료를 시작할 때는 술의 가바 활성화를 대체할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을 사용하고 서서히 줄여가야 한다. 처방한 벤조디아제핀 용량의 10~25%씩 수일에서 수주에 걸쳐 점진적으로 줄이는 전략을 취한다. 벤조디아제핀이나 수면유도제의 의존성이 생긴 경우도 약을 점진적으로 감량해나가야 한다. 금단 증상은 환자의 몸과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신 작용성 약물의 사용은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고 낮추듯 서서히 용량을 높이고 일정 기간 유지하다가 필요성이 줄어들면 천천히 줄여가야 한다. 더불어 불안,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의존성 이슈가 적은 약을 적정 용량 적용하고 수면 위생 교육, 이완 연습과 같은 비약물적인 치료적 접근을 동반하면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좀 더 줄어들 수 있다. 치료를 위해 사용한 약물은 처벌이 두려워서 ‘갑작스럽게’ 끊는 게 아니라 ‘치료적’으로 덜어내야 한다. 의료용 ‘마약류’라는 언어에 갇혀 처벌 중심으로 접근하기보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 금단 현상을 함께 살피는 신중한 사용과 불필요한 약의 덜어내기를 독려하는 진료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확산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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