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a humble leader, look to Washington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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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워싱턴이 물러나고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애덤스는 워싱턴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애덤스 대통령은 전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가를 찾았으나 전직 대통령인 워싱턴만 한 적임자가 없자 그를 찾아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물러난 대통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면 워싱턴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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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BOK-RYONGThe author is a former chair professor of history at Konkuk University. George Washington, the firs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had no formal education. His brother Lawrence taught him to read and write. He worked as a land surveyor. When he was 17, his father and brother passed away, and he inherited a sizable farm.
At age 22, Washington became more famous as a soldier than a plantation owner for his military feat in the battle against France and became the commander of Virginia’s forces. At age 27, he married Martha Curtis, a mother of two living in the same village.
When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broke out in 1775, Washington became the commander of the Continental Army. He was elected president after the war ended in 1783 and reelected in 1793. He could’ve chosen monarchy, considering the circumstances and his prestige, but he declined to run for a third term and returned to his farm in Virginia.
John Adams, the second to take office, had served as vice president under Washington. America’s war with France began in 1798, a year into his term. President Adams searched for a strategist to help overcome the crisis. As there was no one more suitable than the former president, President Adams paid Washington a visit and asked for his help. Washington agreed to again command America’s forces under the leadership of Adams, who had once been his report.
According to regulations at the time, the Army’s Chief of Staff had to be an active-duty soldier. When Adams was concerned about this, Washington immediately returned as an army lieutenant general and led his troops to victory against France. At the time, lieutenant general was the highest possible rank.
Washington was already seriously ill by age 66, having fought in many wars in the country’s early days. He passed away in 1799 wearing his military uniform. He was buried in his hometown, Mount Vernon. If you want to know how a retired president should live, look no further than Washington. Koreans never have any luck with their president, as they are only ever looking for a place to live in the future, even before they leave office.
계급 낮춘 '국부' 워싱턴신복룡 건국대 석죄교수(역사학)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형 로런스에게 틈틈이 글을 배운 게 전부였다. 17세 때 토지측량사로 일하다가 아버지와 형이 세상을 떠나자 막대한 농장을 상속받아 경영했다. 워싱턴은 22세에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면서 농장주보다 군인으로 더욱 유명해졌고, 육군대령으로 버지니아군 사령관이 됐다. 27세에 한마을에 사는 두 아이의 어머니인 마사 커티스 여사와 결혼했다.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이 터지자 워싱턴은 독립군사령관이 됐다. 1783년 전쟁이 끝나자 헌법에 따라 1789년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됐으며 1793년에 재선됐다. 그때 여건이나 명성으로 보면 왕정을 채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세번째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고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가 농부가 됐다.
워싱턴이 물러나고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애덤스는 워싱턴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인 1798년에 프랑스와 전쟁이 시작됐다. 애덤스 대통령은 전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가를 찾았으나 전직 대통령인 워싱턴만 한 적임자가 없자 그를 찾아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워싱턴은 지난날 자기가 거느리던 애덤스 밑에 들어가 전쟁을 지휘하기로 승낙했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육군참모총장은 현역군인이어야 했다. 이를 놓고 애덤스가 고민하자 워싱턴은 서슴없이 육군 중장으로 복귀해 프랑스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당시로써는 중장이 최고위 계급이었다.
당시 66세에 이른 워싱턴은 건국 초기의 온갖 전화(戰禍) 속에서 이미 병이 깊은 상태였다. 결국 1799년 군복을 입은채 세상을 떠나 고향 마운트 버넌에 묻혔다. 물러난 대통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면 워싱턴을 보면 된다. 왜 우리는 대통령 복이 그리 없는지. 퇴임하기 전부터 집터만 보러 다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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