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원이 설명한 ‘철근 담합’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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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을 꾸짖는 듯한 이 말은 지난 6일 '7대 제강사'의 담합 행위를 처벌하는 항소심 선고 재판에서 판사가 꺼낸 말이다.
재판부는 '최저가 동의제'로 관수철근(국가가 필요로 하는 철근)을 입찰하는 조달청의 방식이 행정 편의적인 방식이고, 담합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 제강사 관계자는 "조달청이 제시한 관수철근의 예정가격은 가뜩이나 유통 시세보다 저렴한데 최저가 낙찰제는 그 가격보다도 납품가를 떨어트리는 제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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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이 지속된 데에는 조달청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제강사들에 불리한 입찰 제도를 운영한 탓이 있다”
조달청을 꾸짖는 듯한 이 말은 지난 6일 ‘7대 제강사’의 담합 행위를 처벌하는 항소심 선고 재판에서 판사가 꺼낸 말이다. 방청객들은 의아한 눈치였다. 재판부가 굳이 따지자면 피해자 쪽인 정부 기관을 탓했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은 제강사 편을 들지 않았다.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도 제강사의 잘못을 인정해 억대 벌금형을 내렸다. 1위 기업인 현대제철은 공정거래법상 최고 벌금인 2억원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제강사 임직원 22명도 대부분 유죄 판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법정을 나선 변호인들의 표정엔 안도의 기색이 엿보였다. 법원이 조달청 책임도 일부 인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최저가 동의제’로 관수철근(국가가 필요로 하는 철근)을 입찰하는 조달청의 방식이 행정 편의적인 방식이고, 담합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피고인들이 재판 내내 피력했던 부분이다. 최저가 동의제란 관수철근 입찰에 참여한 제강사들이 투찰한 철근 연간 단가 중 가장 낮은 가격에 맞춰 납품 계약을 맺도록 하는 제도다. 업체 측에서 적정 수익을 고려해 가격과 물량을 적어내도, 결국 다른 회사가 낸 최저가로 계약을 맺게 된다. 손해를 안 볼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가격 후려치기’ 방식 아래, 회사 간 사전 협의 없이는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피고인과 변호인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제강업계도 최저가 낙찰 관행이 있는 한 담합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한 대형 제강사 관계자는 “조달청이 제시한 관수철근의 예정가격은 가뜩이나 유통 시세보다 저렴한데 최저가 낙찰제는 그 가격보다도 납품가를 떨어트리는 제도”라고 했다.
조달청은 이번 법원 판단을 계기로 입찰 방식을 손볼 필요가 있다. 정부 발주 사업은 최저가 입찰이 ‘국룰(국민룰·보편적으로 정해진 규칙)’이라는 변명 대신 기업과 상생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관수철근 입찰 계약은 두 차례나 유찰된 바 있다. 관수철근 시장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더 늦지 않게 판결문을 받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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