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는 백성이 고용한 자다 [책&생각]

한겨레 2023. 12.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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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현령(縣令)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친구 설존의에게 써 준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를 읽어 보자.

"만약 당신 집에서 고용한 일꾼이 돈을 받고 자기 일에 태만할 뿐만 아니라, 집안의 재물까지 훔친다면 반드시 화를 내고 그를 내쫓고 처벌할 것이다." 에둘러 하는 말이지만, 백성은 분노하고 관리를 축출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백성은 관리를 내쫓고 처벌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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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고금유사]

당(唐)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현령(縣令)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친구 설존의에게 써 준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를 읽어 보자. 239자에 불과한 짧은 산문이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관리는 백성이 부리는 자이지, 백성을 부려먹는 자가 아니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사람들은 땅에서 얻은 것 중에서 10분의 1을 내놓아 관리를 고용하고 자신을 위한 업무를 공평하게 처리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관리가 대가를 받고 주어진 일에 태만한 것은 천하가 모두 같다. 태만하기만 하겠는가? 거기서 더 나아가 도둑질까지 하고 있다.”

관리는 백성이 봉급을 주고 고용한 자다. 백성을 부려먹기 위해 관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이 관리를 고용하면서 맡긴 임무는 자신들을 위한 업무를 공평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업무를 공평하게 처리한다’는 부분의 원문은 ‘사평(司平)’인데 ‘司’는 맡는다, 담당한다는 뜻이고, ‘平’은 공평함이다. 예컨대 세금의 부과, 소송의 판결 등을 맡아 공평하게 처리해 달라는 말이다. 요즘 한국사회의 말로 옮기자면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관리는 직무에 태만할 뿐만 아니라, 도둑질까지 한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유종원의 말을 더 들어보자. “만약 당신 집에서 고용한 일꾼이 돈을 받고 자기 일에 태만할 뿐만 아니라, 집안의 재물까지 훔친다면 반드시 화를 내고 그를 내쫓고 처벌할 것이다.” 에둘러 하는 말이지만, 백성은 분노하고 관리를 축출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백성은 관리를 내쫓고 처벌하지 못한다.

왜인가? 유종원은 백성과 관리의 힘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는 백성이 관리를 고용했다는 사실, 백성이 관리를 축출해야 할 당위는 변함없이 존재한다고 여운을 남기고 있다.

‘송설존의서’는 송(宋)의 문인 황견(黃堅)이 엮은 명문 선집인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실려 있다. ‘고문진보’는 조선시대 사족이라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깡그리 외는 책이었다. ‘송설존의서’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한국고전번역원 데이터베이스에 ‘송설존의서’를 검색해 보면 문집 2곳에만 달랑 나타난다. 소동파의 ‘적벽부’는 문집 201곳에 보인다. 이유야 빤하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은 ‘송설존의서’에 담긴 사상이 심히 못마땅하여 보고도 못 본 체했던 것이다.

연말이다. 한 해를 떠나보내는 심정이 무한히 착잡하다. 하지만 이 글 서두의 ‘관리는 백성이 부리는 자이지, 백성을 부려먹는 자가 아니다’라는 구절을 읽고 다가올 해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 사족(蛇足). 설존의는 어떤 관리였던가? 백성 무서운 줄을 알아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자신의 직무에 부지런했다. 재판은 공정했고 세금은 공평했다. 불만을 품고 그를 내쫓고자 하는 백성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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