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을, 코맥 매카시는 대화하는 인간을 창조했다 [책&생각]

임인택 2023. 12. 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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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별세한 미국 문학 거장
한해 전 남긴 연작소설 국내출간
시간, 삶과 죽음, 깨달음, 소설도
“선형 아닌 점증하는 것” 증명
2023년 6월13일 타계한 미국 현대소설 대표 작가 코맥 매카시. EPA 연합뉴스

패신저·스텔라 마리스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l 문학동네 l 1만9800원·1만7000원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 ‘로드’ 이후 16년 만의 작품이자 여든아홉 타계 한해 전 남긴 연작소설 2권. 누군가는 말로의 압축적 결정체인가 놀랄 테고, 누군가는 말로의 장광설인가 물을 것이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1933~2023)가 2022년 마지막 남긴 이 작품의 일단을 추려보자니 두 가지 양태가 가능하겠다.

1. 이 소설은 1980년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 출신 인양 잠수부로 살아가는 서른일곱살 남자의 이야기다. 돈 받고 “뭐든 사라진 거”를 찾아 수중으로 들어가는 보비 웨스턴. 과거엔 아니었다. 그는 수학으로부터 전공을 바꾼 전도 유망한 물리학도였다. 보비에겐 여동생이 있었다. 10년 전 자살한 얼리샤 웨스턴. 스무살이었다. 십대 초반에 대학을 들어간 천재 수학자. 남매의 아버지는 원자폭탄 개발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중 나이가 많았고 수소폭탄 개발을 주도한 텔러와 함께하며 적잖은 공격을 받았다. 웨스턴 남매의 조부는 화학자다. 보비의 족보에 흐르는 자연과학적 기풍이다.

2. 이 소설은 웨스턴 남매의 지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열두살 때부터 얼리샤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직접적으론 조현병을 이유 삼지만, 기저엔 오빠와의 드러낼 수 없는 관계의 내밀성, 금지된 관계의 중압감이 있다. 겨울 숲을 홀로 찾아 삶을 마감한 얼리사갸 보비에게 남긴 상실과 허무는 얼리샤의 생전 독보성과 심연의 깊이에 비례한다. 관계로부터의 절망은, 수학으로부터의 절망과 닿아 있다. 얼리샤가 ‘환상계’를 오가다 극단의 선택에 당도하기까지, 삶과 달리 절대 진리에 당도하리라, 삶과 달리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헌신했던 수학을 통해서도 불가능의 경지를 자각한 데 따른 또 하나의 절망. 얼리샤는 아버지 따라 “수식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사랑했”고 일찌감치 “방정식들이 …생명이 유지되는 어떤 형식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내 눈앞에 실재한다는 걸 이해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다.

연작소설의 1권 ‘패신저’가 지금 보비의 어제오늘이라면, 2권 ‘스텔라 마리스’는 과거 얼리샤의 어제오늘이다. 보비는 “시간이 선형적이라기보다는 점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과거 얼리샤는 지금 보비를 띄우는 부력과 같다. 선형이 선후이고 인과라면 점증은 불확정적인 변화일 터, 2권을 본 뒤 이미 덮은 1권이 증폭되는 것과도 같다.

이를 통해 1의 설명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보비는 심해 잠수부다. 뭐든 사라진 것을 찾아 들어가는 자다. 다만 그조차 사라지고 싶은 욕망으로 들어간다. 2의 설명도 달라져야겠다. 지난 사랑 이야기? 아니다, 보비는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 여동생과. 다만 여동생은 죽었던 것이다.

남녀의 사랑을 바탕색으로 다진 이 작품으로, 매카시가 냉소적 유머나 묵시록적 세계관이 돋보인 전작들과 이격시킨 거리는 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실은 이 작품이야말로 그의 소설이 “선형적이라기보다는 점증하는 것”임을 표명한다. 삶과 죽음의 함수를 통찰해보려 사력을 다한 결과로서, 영혼, 사랑, 수학, 물리, 우주, 종교, 미국 현대사, 범죄, 공포, 미신, 심지어 미국서 가장 ‘맛있는’ 치즈버거(보비의 친구 오일러가 “녹스빌의 게이 스트리트에 있는 커머스 당구장의 간이식당에서 먹은” 것으로 “휘발유를 써도 손가락에서 기름이 씻겨나가지가 않”는다) 등에 관한 작가의 전생애적 고뇌가 미수에 이르러 한껏 응축된 모양새다.

이 소설은 문답식 대화에 의한 이야기로 소개해도 좋겠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매카시는 말하는 인간을 만든다. 때로 선문답을 불사하듯, 인물들의 대화가 소설의 몸통을 이룸으로써 그들이 각기 밟아가는 구도의 길을 연상시킨다. 대화 또한 선형적일 수 없다. 이 대화와 저 대화는 이어지지 않으나 증폭하여 어딘가 닿아 있다. 뉴욕타임스가 “향후 150년간 전도서처럼 작가들이 훔쳐 자기 책의 서문으로 쓸, 웃기고 이상하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문장들이 가득하다”고 서평한 이유이겠다.

보비는 얼리사와의 관계로부터 한때 벗어나려 했다. 자책과 후회의 더 깊은 정체가 소설에서 드러나기까지 보비는 한 사건에 연루된다. 새벽 급한 의뢰를 받아 멕시코만 수중의 비행기를 탐색한다. 당일 저녁 모르몬교 선교사처럼 갖춰 입은 남성 둘이 보비를 찾아와 블랙박스 등을 가져갔는지 따져 묻는다. 승객 한 명이 실종되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며칠 뒤 보비의 집은 수색당해 있었고, 또 며칠 뒤 당시 함께 비행기를 수색했던 친구 오일러가 죽는다. 보비는 그를 쫓는 자들로부터 달아나고자 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이 사건은 의미가 없다. 대화, 즉 구도의 길을 걷기 위한 자극에 불과하달까. 보비는 사방으로 충돌하는 입자처럼, 카페에서, 모텔 카운터에서, 연고 없는 마을의 작은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다 사람들과 묻고 답한다.

마치 보비와 대화를 기다린 듯한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상충하는 두 가지 입장은 이렇게 대표된다.

“하나의 공허 뒤에 또하나의 공허이고 그게 본질이야. 그냥 하나가 아니야. 좋은 책에서 말하는 것하고는 달라. 너는 공허가 그냥 공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계속돼.” 보비의 삼촌 로열의 말이다. 그는 얼리샤의 죽음을 떠올리며 운다. 로열의 삶이야말로 하잘것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삶을 버텨낸다.

“슬픔은 삶의 재료야. 슬픔이 없는 삶은 아예 삶이 아니지. 하지만 후회는 감옥이야. 네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너의 일부가 더는 찾을 수도 그렇다고 절대 잊을 수도 없는 어떤 교차로에 영원히 꽂혀 있는 거야.” 지적 담론을 나눴던 28년지기 보비의 친구 존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죽는다.

삶은 불확정적이라는 자못 뻔해 보이는 이치를 문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매카시가 이처럼 사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여 그는 누구의 편을 들어보려는 것인가.

주제의 중층성, 소재의 현학성, 현실과 환상의 교차 따위로 매카시 작품 중 대중이 감각하는 펜스가 가장 높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꾸로 가장 도전적인 메시지로 대중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고도 하겠다.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작가의 작가”로 매카시를 부르는 번역가 정영목이 역대 주석을 가장 많이 삽입한 책이 이것이다. 그는 7일 한겨레에 “원서엔 주석이 전혀 없다. 모국어 사용자도 이해 못할 맥락이나 정보가 많다”며 “당대 풍경을 말하는 이들의 녹취록처럼 산만하고 일탈 많은 대화들이 그 자체로 중요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민 끝에 주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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