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영의 ‘오믈렛’, 제 마음대로 죄송했던 마음의 정체 [책&생각]

한겨레 2023. 12. 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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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영의 첫 시집에는 '부드러운 마음'이라는 제목을 가진 세 편의 시가 실려 있다.

각각의 시는 산에 오른다거나 아랫마을을 간다거나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이들 모두는 이동을 통해 전에는 겪어본 적 없던 일을 겪는다.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러 시선의 교차 속에서 포착되고, 때때로 그 포착이 곧 세상의 전부라 여기는 이들로부터 현실이 제멋대로 재단되기도 한다는 것을 끝내 일러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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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의 시동걸기]

오믈렛
임유영 지음 l 문학동네(2023)

임유영의 첫 시집에는 ‘부드러운 마음’이라는 제목을 가진 세 편의 시가 실려 있다. 각각의 시는 산에 오른다거나 아랫마을을 간다거나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이들 모두는 이동을 통해 전에는 겪어본 적 없던 일을 겪는다. 그러나 시는 그 경험을 특권화하지 않는다. 시의 말미마다 꼭 다른 이의 시선을 끼어들게 해서 누군가에겐 새롭거나 신비롭거나 참혹하다 할 만큼 극적인 일화도 다른 누군가에겐 흔하거나 현실적이거나 연속된 생활의 한 풍경과 같은 일화로 해석되는 여지를 열어둔다. 한결같이 묘한 인상을 남기는 이들 세 편의 시 중 시집에는 두 번째 순서로 수록된 시를 함께 읽는다.

“산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라서요.// 계곡 근처 지나다가 버드나무 밑에 앉았습니다/ 그냥 흙을 파고 놀았는데요./ 구덩이를 만들고 만들다가 아주 오래된 걸 발굴했거든요.// 저는 그걸 보자마자 알았는데요./ 아, 이건 귀한 물건이구나./ 요즘에는 오래된 것은 흔치 않고/ 흔치 않다는 건 귀하다는 거잖아요.// 그걸 주머니에 집어넣고 집에 가서/ 샤워기 틀고 살살 씻어보니까요./ 흙이 다 씻겨나가고요.// 남은 건 제 손에 쏙 들어오게 작은/ 병이었는데요./ 허리가 호리호리하고요./ 빛나지는 않고 푸르스름하게 흐린/ 유리병 같은 것이었는데요.// 저, 선생님 산책로에서 주무시는 거 봤어요.//…// 제가 선생님, 거기서 주무시는 거 봤거든요./ 그런데 벌린 입으로 침까지 흘리면서 주무시는 꼴이/ 징그럽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린내가 진동하던 그날 앵봉산 산책로에/ 큰대자로 누워 계시던// 선생님. 선생님.// 언제 눈을 뜨시려나./ 살아계신 분을 묻어드릴 수도 없었고요.// 선생님을 보았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전 누가 저를 보았다고 할까봐.// 제 마음에 대해서만 생각한 것이었어요.” (‘부드러운 마음’ 부분, 32~34쪽)

시에서 화자는 산에서 주워온 유리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틈새로 자신이 봤던 “산책로에서 주무시”던 “선생님” 얘기를 슬며시 올려둔다. 아니, 어쩌면 시가 꺼낸 유리병 얘기는 화자가 정말 말을 걸고 싶은 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위 시는 길에서 자던 사람을 살피지 않고 지나쳐버린 상황이 부대꼈던 이가 그 마음을 방치하지 않기로 하고 실은 많이 걱정됐던 그 사람을 향해 말을 건네는 화법으로 쓰인 셈이다. 길가에 함께 있던 이가 위태로워 보였음에도 “그냥 지나쳤”다고, “죄송”하다고. 그런데 이처럼 형성된 시의 정서는 시의 말미에서 뒤집힌다. 화자의 지극한 마음은 “누가” 보면 잘 모르는 삶에 대한 과장된 판단을 “제 마음”대로 해버린 것일 뿐이다.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러 시선의 교차 속에서 포착되고, 때때로 그 포착이 곧 세상의 전부라 여기는 이들로부터 현실이 제멋대로 재단되기도 한다는 것을 끝내 일러주려는가. 임유영의 시는 성실하게 천진하다. 꾸밈없는 장면을 시로 부지런히 끌어오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는 의미에서. 동시에 임유영의 시는 영리하게 서늘하다. 꾸밈없는 장면이 얼마든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장면은 전체의 한 부분일 뿐임을, 시가 이미 알고 있다는 차원에서. 아무래도 부분을 전체로 오인하는 시선으로는 ‘부드러운 마음’에 쉽게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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