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인가 [아침햇발]
[아침햇발]
강희철 | 논설위원
값비싼 명품백을 받은 대통령 부인의 행위는 법 위반인가 아닌가. 초등 산수 같은 이 문제가 동영상 공개 열흘이 지나도록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는 건 코미디다.
“김영란법 위반이 맞다.” 윤석열 대통령의 특수부 시절 동료, 선후배 여섯 사람에게 물어 똑같은 답변을 들었다. “딱 떨어진다.” 윤 대통령 내외와 교분이 남다른 이조차 딱 잘라 말했다.
김 여사는 남편이 취임한 뒤인 지난해 9월13일, 최재영 목사라는 사람에게서 300만원짜리 ‘디올’ 백을 선물받았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의 배우자’로서, “동일인에게 1회 100만원 또는 1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것이다. 처벌 조항에는 ‘3년 이하 징역, 3천만원 이하 벌금’이 명시돼 있다. 더욱이 김 여사는 백을 준비했다는 최 목사의 ‘제공 의사 표시’를 읽은 뒤 방문을 허락했다. 얼떨결에 마지못해 받았다는 변명은 통하기 어렵다. 거절하지 않았고, 돌려줬다는 말도 없다.
이 문제는 김 여사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배우자가 수수금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된 공직자에겐 그 즉시 서면신고, 반환 또는 반환 종용 의무가 발생한다. “지체 없이” 이행하라고 법에 적혀 있다. 안 했다면 배우자와 똑같이 처벌받는다. 김 여사의 경우 이행 의무자는 윤 대통령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백 수수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알고 나서 법적 의무를 이행했는지가 중요하다. 설령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해도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까지 모른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윤 대통령이 어떻게 했는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할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지금껏 함구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영란법 주무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김 여사에 대한 신고 여부를 묻자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별명이 ‘조선제일검’이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영상이 만천하에 공개됐는데도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고 얼버무렸다. 김 여사 말고 대통령실 다른 공직자의 부인이 같은 행위를 했어도 이럴까.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은 기본이다. 권익위가 직권조사에 나설 수도 있다. 걸핏하면 시행령을 고쳐 ‘등’의 범위를 마구 확대하는 정부이니, “업무조사에 필요한 실태조사 등”(김영란법)에 근거하면 못 나설 이유가 없다. 검경 수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김 여사가 임기 중 불소추 특권을 누리는 대통령 같다.
한편에선 어이없는 물타기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독수독과’ 주장이 대표적이다. 백 수수 동영상(독과)은 ‘서울의 소리’가 설정한 함정(독수)에 빠진 결과물이니 그 자체로 원인 무효라고 떠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유명 웹툰 작가의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검찰이 재판에 넘긴 한 특수학교 교사에 대한 유력 증거는 아이 부모가 ‘몰래 녹음’한 음성 파일이다. 이것도 독과수인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처벌의 결정적 증거는 최씨의 태블릿 피시에서 나왔다. 한 방송사 기자가 최씨의 허락 없이 들고나와 방송에 내보냈다. 이 역시 독과수인가. 원래 독수독과는 검경 등 ‘수사기관’의 위법한 증거수집 행위를 금하는 형사사법의 원칙이다. 언론의 취재윤리와는 접점이 없다. 그런데도 이 둘을 한데 섞어 대중의 혼선을 유도하느라 분주하다.
대통령도, 김 여사도 지금은 힘이 세다. 이번엔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끝내 아무 일도 없을 수는 없다. 이번 백 수수의 공소시효는 5년, 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4개월 뒤인 2027년 9월까지 수사와 처분이 가능하다. 만에 하나, 검찰이 그때까지 고의로 방치하면 직무유기가 된다.
“ㄱ 전 검사장을 비롯해 그간 여사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단 한명도 예외 없이 대통령에게 손절을 당했다.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나.” 윤 대통령의 옛 동료들은 걱정과 우려의 말을 이어갔다. “대통령이 이혼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여사 문제는 정리 못할 것이다.” “저런 일이 이번 한번뿐일까. 백도 심각하지만, 금융위원 인사 청탁 통화를 들었다는 전언이 더 쇼킹했다.” “‘남북 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라는 김 여사의 말은 또 뭔가.”
윤 대통령이 모르지 않을 중국 법가의 고전 ‘한비자’에 ‘팔간’편이 있다. 최고 권력자가 경계해야 할 주변의 여덟가지 위험을 지목하면서, ‘동상’, 즉 한 이불 덮는 배우자를 첫손에 꼽았다. 2천년 전 통찰이 현실이라니, 섬뜩하고 놀랍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대통령, 한-네덜란드 정상회담…반도체 동맹 성명 채택
- 법원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천식 환자에도 배상 책임”…민사 배상 가능성 커질 듯
- 김기현, 당 대표 사퇴…여당 선거 넉달 전 비대위 체제로
- [단독] 군검사도 “해병대 순직 사건 VIP 외압 있었다 들어” 진술
- 화석연료 ‘퇴출’ 빠졌지만…‘10년 안에 전환’ 시기 명시
- 한신대 학생들 ‘강제출국’ 규탄…“유학생을 이렇게 내쫓을 수가”
- 악몽이 돼버린 김건희 여사의 ‘국빈 방문’ [박찬수 칼럼]
- ‘슈링크플레이션’ 안 돼…용량 몰래 줄이면 ‘과태료 최대 3000만원’
- [단독] 이준석, 비대위 가처분 소송 ‘성공보수’ 미지급…“7700만원 지급해야”
- 정당한 조합활동도 타임오프 위반?…노동부 ‘노조 때리기’에 노동계 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