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TV 밖 쇼펜하우어 인기의 진짜 이유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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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는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과 생각을 보여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쇼펜하우어 열풍을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라거나 트렌드에 편승한 기획이라고 폄하하기에는 왠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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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나 혼자 산다'는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과 생각을 보여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1인 가구와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가운데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흥미로우면서도 짠한 일상을 흥미롭게 보여주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방송 초창기 혼자 사는 삶을 미화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 10주년을 맞이한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찰 예능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나 혼자 산다'는 그동안 여러 히트 상품을 탄생시켰고 다양한 화제를 만들어냈다. 방송에서 잠깐 소개된 책이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는가 하면, 최근 김대호 아나운서의 경우처럼 방송에 출연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 순식간에 뜬 인물도 많다. 프로그램의 마스코트인 곰 인형 ‘윌슨’의 인기도 대단하다.
최근 서점가에서 다시금 ‘나 혼자 산다’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방송에서 배우 하석진이 읽고 있는 책으로 소개되며 순식간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유노북스)를 비롯해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2024년 무지개달력’까지, 방송이 ‘히트상품 제조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 열풍’의 진원지로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등, 다른 쇼펜하우어 관련 책들의 순위도 끌어 올리고 있다. 3권의 책들은 모두 12월 첫째 주 알라딘서점이 집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포함되어 있다.
2023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왜 갑자기 독자들은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에 열광하는 것일까. 오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쇼펜하우어 철학은 어떤 의미일까. 쇼펜하우어 열풍을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라거나 트렌드에 편승한 기획이라고 폄하하기에는 왠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 분명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아주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덩어리인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욕망을 이기는 힘은 ‘의지’인데 안타깝게도 의지는 늘 우리 자신을 배반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고통이야말로 삶의 본래 모습이며, 쾌락이나 행복은 고통이 없어졌을 때 잠깐 찾아오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진단했다. 헛된 희망으로 가득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과 자기 진단을 강조한 철학자가 바로 쇼펜하우어다. 모든 인간의 근원적이면서도 실존적인 고민인 ‘의미 있는 삶’에 대해 질문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유와 깨달음은 아프지만 그래서 더욱 귀하다.
한 해 동안 우리 모두 참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그 노력은 과연 나를 위한 열심이었을까, 남을 위한 열심이었을까. 쇼펜하우어가 남긴 짧은 글을 읽는 독자들은 십중팔구 이러한 질문들과 마주하며 지난 1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을 것이다.
비단 40대만 쇼펜하우어 철학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하며 삶의 나침반을 찾고 있는 모든 연령대에게 쇼펜하우어가 남긴 글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한다.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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