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추우면 입김을 숨길 수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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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잘 지내고 계십니까.
낯선 누군가에게 말을 붙인다는 게 젊어서는 잘 안되던데 나이 먹고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식사를 했냐고 묻는 일은 다정한 인사겠지만 행색이 초라한 어르신에게는 실례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럭저럭 살아 가고 있는 인류에게 뺨 한대 후려치는 듯한, 어쩌면 어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한마디라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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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잘 지내고 계십니까. 낯선 누군가에게 말을 붙인다는 게 젊어서는 잘 안되던데 나이 먹고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풍경을 채집하러 다니는 직업을 가졌기에 작은 용기를 내는 순간이 글감으로 이어지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식사를 했냐고 묻는 일은 다정한 인사겠지만 행색이 초라한 어르신에게는 실례일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야 할 상황은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저 한마디. 세끼나 챙겨 먹는 저로선 슬슬 뒷걸음질을 치다 멀리 도망을 가야 할 상황입니다.
다시금 용기를 내어 여쭤봅니다. ‘나 오늘 이분께 꼭 1만원 한장 쥐어드리고 간다’ 같은 알량한 마음을 앞세워 말입니다. 한데 돌아오는 대답이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럭저럭 살아 가고 있는 인류에게 뺨 한대 후려치는 듯한, 어쩌면 어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한마디라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합정대교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스친 한 어르신과의 일화는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떠오릅니다.
어제저녁 어스름 산책길에서 고양이들에게 줄 먹이를 준비하는 한 여인과 마주쳤습니다. 방해가 될까 애써 못 본 체하려 하면서도 저는 다 봤지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고양이 집들로 보이는 상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각각의 상자에는 비닐막이 쳐져 있는 것을요.
겨울이 깊어갈수록 진한 입김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살면서 어떤 부끄러움도 점점 더 선명해지니 이것 참 어찌해야 하나 싶습니다.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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