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법 없이도 살 회장님이 있을까

김두현 변호사 입력 2023. 12.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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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현실 개선할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법 대신 회장님의 선의에 기대는게 정말 대안인가
김두현 변호사

지난해 시행된 중대재해법을 요약하면 ‘회장님이 직접 안전을 챙기고, 안 챙겨서 사고가 나면 책임도 져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싶겠지만 원래는 아니었다.

그간 일하다 사람이 죽어도 일선 관리자나 하청업체만 가볍게 처벌받고 회장까지 책임지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잘못은 회장님께 보고하지 않고 안전관리책임을 소홀히 한 현장관리자나 하청업체의 몫이었다. 돈줄을 쥔 사람이 책임지지 않으니 안전 비용도 지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회장님에게 법으로 의무를 부여하고 안전 비용을 지출하게 한 것이다. 회장님의 선의와 자발적 관심에만 기대서는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았으니까.

지난해 경남 거제 대우조선(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일하던 하청회사 소속 용접공이 스스로를 0.3평 철창감옥에 가뒀다. 그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조선소에서는 2023년 현재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이 죽어 나간다. 죽어가는 노동자는 대부분 하청 비정규직이다. 임금은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그 최저임금조차 툭하면 지급되지 않았다. 4대 보험료마저 상습적으로 떼먹고 있으니 언감생심 최저임금이라도 제 때 받으면 다행이었다. 명색이 세계적인 조선회사에서 일을 하는데도 그랬다.

법에 따라 임금을 조금이라도 올려달라고 교섭도 해봤지만 하청업체들은 “원청이 결정할 일”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원청인 대우조선은 처음부터 자신은 제3자라면서 무시했다. 하다못해 안전 문제라도 대우조선이 직접 나서서 협의해 달라고, 하청노동자들이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젊은 용접공은 작업을 거부하고 자신을 0.3평의 좁은 철창감옥에 가뒀다.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평생을 일해도 1%조차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 47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가압류였다. 대우조선은 자신은 하청노동자와 관련없는 제3자라고 하면서 하청노동자가 파업만 해도 천문학적 손해가 발생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했다.

이 사건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이 많은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덕분에 오랫동안 논의만 있던 노란봉투법도 급물살을 탔다. 노란봉투법을 요약하면 ‘원청도 하청노동자와 직접 대화에 나서고, 손해배상청구도 노동자 개별로 엄격히 구분하고 남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 이상 원청이 “나는 제3자”라며 나몰라라 하지 못하게 하고, 직접 하청노동자의 안전과 상식적인 근로조건을 보장해주라는 것이다. 더 이상 손해의 보전을 받을 수도 없는, 오로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기 위한 잔혹한 폭력과 악의로 점철된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남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내용도 아니었다. 사회 각층의 오랜 논의와 유사한 취지의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반영한 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란봉투법은 지난달 9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은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교섭 당사자와 파업을 무리하게 확대하고 건강한 노사관계를 크게 저해한다”는 이유였다.

노사교섭이 노사 관계를 저해한다는 전제인데, 이 말대로면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노동 3권을 인정하는 세계 선진국의 노사관계는 모두 파탄이 났어야 한다. 이미 수많은 정규직 노사가 교섭을 하고 있지만 파업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거의 대부분은 교섭만으로 합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하청 비정규직들이 교섭 당사자가 되면 새삼 노사관계를 크게 저해한다는 건 무슨 근거에서인가. 사장이 불편해지면 노사관계가 크게 저해되는 것인가.

정부는 하청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노란봉투법 대신 ‘상생임금위원회’를 제안했다. 원청과 하청이 상생을 위해 협의하고,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복리후생을 지원하는 것은 불법파견과 무관한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다. 그간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개입하는 것을 불법파견의 징표로 인정되어 온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원청은 그간 불법파견이 무서워서 하청노동자를 외면한 것이 아니다. 그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애초 노동법의 규제를 피해서 임금을 적게 주고 안전비용도 낮추려고 일부러 하청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은 노란봉투법 대신 임금과 안전 비용을 원청이 ‘선의로’ 챙겨주기를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법 없이도 살 정도로 착하고 정의로운 원청 회장님을 만나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 우연과 선의에만 기댈 것이면 법은 왜 필요하고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법 없이도 살 회장님의 선의를 믿으라고 어렵게 통과된 노란봉투법을 그리 쉽게 거부해버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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