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언어에도 ‘리즈’가 있어
옥스퍼드 사전이 2023년 올해의 단어로 ‘리즈(rizz)’를 선정했다. ‘이성을 잡아끄는 매력’이라는 뜻으로 미국 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단어라고 한다. ‘카리스마(charisma)’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단순히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뜻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숨겨진 매력, 이성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을 의미한다. 2021년 인기 스트리머 카이 세나트(Cenat)가 실시간 인터넷 방송에서 처음 썼다고 알려졌는데, 젊은 층에서 큰 파급력을 얻었다.
1920~1930년대에는 비슷한 뜻으로 ‘잇(It)’을 사용했다. 1931년 조선일보 기자이자 시인인 김기림은 ‘첨단적 유행어’라는 기사에서 ‘잇’의 유래를 설명한다. 작가 엘리너 글린의 1927년 소설 ‘잇(It)’에서 시작돼 미국 여배우 클라라 보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잇’으로 새 의미가 더해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잇’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녀 자석처럼 끌리는 사람’을 뜻했다. 당시 경성에서도 “그 여자는 꽤 ‘잇’이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잇’ 역시 요즘의 ‘리즈’처럼 성적 매력이나 아름다움을 넘어 다른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자질을 뜻했다. ‘잇’은 지금도 살아남아서 ‘꼭 가져야만 하는 물건’이라는 뜻의 ‘잇템’ 같은 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쓰는 사람의 의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단어는 본래의 뜻 외의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지금 세대는 “그 사람에게는 ‘리즈’가 있어”라고 말하고, 100년 전엔 “그 사람에겐 ‘잇’이 있어”라고 했다. 세대가 바뀌면서 비슷한 의미를 다른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느낌과 감정들은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들 때가 있다.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표현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 ‘잇’과 ‘리즈’를 보면 언어가 얼마나 유연한지 알 수 있다. 100년 전 ‘잇’과 지금의 ‘리즈’가 단어는 다르나 비슷한 의미로 쓰이듯, 언어는 시대와 유행, 문화와 세대를 담아 변화하고 파생되며 우리와 함께 유연하게 생동한다. 인간보다 언어의 생명력이 더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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