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6] 지도가 없는 세상
지난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것 역시 지도’라는 주제로 열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관람했다. 관련 책자를 보니 기획자는 서구 중심주의, 표준의 상징으로 지도를 규정하면서 지도 속 구획 짓기, 경계선, 기호 등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작품을 모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지도라는 주제가 흥미로워 즐거이 전시를 보았다.
지도를 주제로 한 전시를 보고 있자니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1996년 작품상, 감독상 등 9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잉글리시 페이션트’다. 부커상을 수상한 마이클 온다치의 소설을 영화에 맞게 각색했다. 영화에는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사막을 탐험하는 다국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공동의 목적을 가진 ‘원 팀’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연합군과 독일군 측으로 진영이 나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탐험대의 영국인 부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진 헝가리 백작 알마시가 사막에서 부상을 입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탐험대의 지도를 어쩔 수 없이 독일에 건넨 것이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 캐서린은 결국 사막에서 숨을 거두고, 알마시 또한 그녀의 뒤를 따른다. 안타까운, 그러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다.
영화를 본 후 그들이 거닐었던 사막에 가고 싶었다. 결국 몇 년 전 겨울,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으로 향했다. 작은 밴을 타고 높다란 하이아틀라스 산맥을 넘는다. 국경 근처, 사하라 사막의 접경인 메르주가라는 작은 동네가 목적지다. 여기서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간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룻밤을 묵고자 천막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급격히 추워진 사막의 밤에 모닥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막을 달이 환하게 비춘다. 주변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니 사방으로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영화 속 알마시 탐험대가 밤을 보낸 사막의 정경이 떠오른다. 달밤의 사막에서 잠든 집시와 그를 지키는 듯한 사자가 그려져 있는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1897) 속 풍경 같기도 하다. 초현실적이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다.
영화 속 캐서린은 죽기 전 알마시에게 편지를 쓴다. “당신과 함께 지도가 없는 땅을 걷는 것이 소망이었다”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라 간에 ‘선을 긋는’ 것을 넘어 ‘선을 넘은’ 느낌이다. 사랑과 인류애로 뒤덮인 경계 없는 세상을 꿈꿔 본다. 아마 이는 지도가 없는 세상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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